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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echnology Worl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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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Electric Electronic Technology</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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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26 회로기판고장수리 개편 교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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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19 Oct 2026 15:52: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4"><![CDATA[회로기판고장수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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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3 :손자의 피로 왕관을 훔친 여인 -피의여왕 아달랴  1/1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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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세번째 이야기

주성준 지음

- 피의 여왕 아달랴 : 손자의 피로 왕관을 훔친 여인(1/10)

[작가의 말]

본 작품은 『소설 이스라엘 왕조실록』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로, 남유다의 유일한 여왕으로 알려진 아달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어느 나라의 역사이던지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장희빈, 명성황후의 이야기나 중국의 양귀비, 측천무후, 서태후 등의 이야기 들입니다. 성경에 열왕기와 역대기에도 비슷한 사건이 존재합니다. 열왕기하 8:26~11:20에 기록된 북이스라엘 아합과 이세벨 여왕의 딸로 유다왕국에 시집와서 피로써 여왕으로 등극한 아달랴의 이야기입니다. 아달랴는 다윗 왕가의 씨를 말리기 위해 자신의 손자들을 모두 학살하고, 스스로 여왕의 자리에 올라 유다를 바알 신앙으로 타락시키려 했던 희대의 악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지배했던 시기는 유다 왕조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숨 막히는 순간이었으나, 성경의 기록만으로는 그 서사를 온전히 채우기에는 빠진 여백이 많습니다.

본 소설은 성경의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삼고, 그 위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혀 집필하였습니다. 특히 극적 재미를 위해 등장하는 ‘칼라이’, ‘엘리야후’ 등의 인물과 ‘붉은 뱀’과 같은 조직은 역사적 실존 대상이 아닌, 작가가 창조한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제1부. 북방의 붉은 신부

"솔로몬의 영광이 저물자, 북녘의 그림자가 남쪽의 등불을 삼키려 한다.“

[서막] 두 왕조의 엇갈린 운명

역사는 때로 잔인한 장난을 즐긴다. 가장 잘될 것 같아 선택한 일들이 가장 큰 비극의 문을 여는 경우가 그렇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형제 왕국이 화해라는 이름 아래 맺은 혼례도 그랬다.

남유다의 태자 여호람은 성군 여호사밧의 장자였으나, 아버지의 신앙이나 훌륭한 기개는 물려받지 못했다. 거대한 나무 아래 자란 풀이 햇빛을 덜 받아 약해지듯, 그는 평생 아버지의 그늘 아래 움츠러들어 살았다. 왕관은 그에게 영광의 상징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쇳덩이였다. 타고난 결단력도 의지도 부족한, 스스로 앞장서기보다 누군가가 이끌어 주기를 기다리는 인물이었다.

반면 그의 신부가 될 아달랴는 정반대의 성정이었다. 아버지는 북방의 강력한 왕 아합이었고, 어머니는 부와 향락의 도시 시돈에서 바알 신교를 들여와 북 이스라엘을 뒤흔든 이세벨이었다. 아달랴는 어머니의 아름다움과 아버지의 야망을 함께 물려받은, 치명적인 북녘의 꽃이었다. 그녀에게 남유다로의 시집은 단순한 혼례가 아니었다. 새로운 땅을 바알의 제단으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이 결혼은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여호람이라는 텅 빈 그릇 속으로 아달랴라는 강한 독이 스며드는 과정에 가까웠다. 예루살렘의 문이 열리고, 다윗의 등불이 꺼지려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1장. 환호 속의 그림자

솔로몬의 화려한 시대는 이미 저물었지만, 예루살렘은 아직 그 황금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성벽은 이미 쇠락의 냄새를 먼저 알아채는 듯, 바람 속에서 낮게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오후, 북쪽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행렬이 성문 앞으로 다가왔다. 북이스라엘의 공주 아달랴의 혼례 행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혼례라기보다 어떤 제사의 행렬인 듯한, 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백성들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가마가 아니라, 그 앞뒤를 호위하고 있는 붉은 뱀이라고 불리우는 붉은 갑옷의 무리였다. 갑옷은 짐승 껍질처럼 번들거렸고, 검은 가면 위에는 금빛 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칼은 유다의 곧은 칼과 달리, 뱀의 혀처럼 굽어 있어 불길한 기운을 풍겼다.

“멈추시오! 성안에서 그런 무기는 허락되지 않소!”

근위대장이 창을 가로막았으나, 붉은 뱀의 우두머리 칼라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말 위에서 근위대장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스스로 생명을 쥐고 흔드는 자의 눈이었다.

“비켜라. 공주님의 길이다.”

칼라이의 눈빛이 스치는 순간, 근위대장의 등줄기에 서늘함을 느꼈다. 일촉즉발의 때, 태자 여호람이 보낸 사자가 급히 나서며 외쳤다.

“그만두시게! 태자비와 귀한 손님들이시니 실례하지 말고 길을 터 드리게!”

그 말 한마디로 유다는 첫 순간부터 북방의 기세에 밀렸다. 칼라이는 짧게 웃으며 성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가마의 장막이 걷히자, 백성들의 웅성거림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칠흑의 머리칼, 차가운 빛의 피부, 붉게 빛나는 눈동자. 아달랴의 미모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독처럼 은근했다. 성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호람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태자 저하.”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아달랴의 입가에는 계산된 미소가 걸려 있었으나, 여호람에게는 그 미소가 한없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곳은 곧… 제 도시가 되겠지요.”

그녀의 낮은 속삭임은 군중의 환호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오직 칼라이만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2장. 첫날밤의 향

성대한 결혼식이 끝나고 모든 인사를 마친 여호람은 아댤랴가 기다리고 있는 신혼 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신혼방은 예루살렘 성의 다른 방과는 다르게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신혼 방을 꾸미고 장식한 것은 북이스라엘에서 온 장인들이었다.

그들이 시돈에서 들여온 이방의 향은 어느새 방 안을 짙게 채우고 있었다. 달큼하면서도 어딘가 매콤한 향은, 들이마실수록 사람의 마음을 풀어헤치고 몸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기운이 있었다. 여호람은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이미 반쯤 그 향에 사로잡혀 있었다.

발걸음은 평소처럼 고단하거나 흔들리지 않았지만,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달랴는 침소 한가운데 붉은 장막 앞에 앉아 있었는데 여호람의 눈에 그녀의 모습은 마치 꿈에서 본 천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녀는 몸을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고, 손짓 하나 없이 고요히 앉아 있었지만, 시선만으로 방 안의 모든 것을 사로잡는 듯 했다.

“오셨군요, 저하.”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음향이라기보다 피부를 파고드는 숨결에 가까웠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장막이 열리면서 장막 뒤의 깊은 어둠 속에서 빼어난 미모를 가진 두 명의 시녀가 미끄러지듯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시녀가 아니었다. 시돈과 사마리아의 신전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풍요를 부르기 위해 무아지경의 춤을 추고, 타락한 제사 중간에 남녀 합일을 주관하던 이방의 신전 사제, 곧 ‘케데쇼트(Qedeshot)’들이었다. 두 여자 사제가 들어서자마자 장막 뒤 어디선가 나직하고 기이하고 관능적인 타악기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제복을 입고 몸을 낮추고 여호람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둘은 함께 걸어 나오면서도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였다. 두 사제의 피부는 달빛 아래서 부드럽게 빛났는데, 그 빛은 새하얀 것도, 누런 것도 아닌 묘한 온기를 품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손끝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붉은 점 하나가 그들의 이마에 찍혀 있었는데, 그 점은 작은데도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이상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 붉은 점은 이들이 바알의 사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여호람의 양옆으로 다가섰다.

말은 없었지만, 손끝이 닿는 순간 그 의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한 사제가 손가락으로 여호람의 가슴과 등을 스쳤고, 다른 사제는 그의 허리춤에 손을 얹어 아주 천천히 옷자락 위로 손바닥을 미끄러뜨렸다. 가볍고 부드러운 손길이었으나, 그 안에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 숨어 있었다. 여호람은 그 손끝의 온기를 느끼며 숨이 흔들렸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조차 혼란스러웠고, 이성이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은 마지막으로 의무감을 붙잡으려 했다.

“안… 됩니다...... 이건......율법에….”

하지만 그 말은 힘이 없었다. 이미 다 벗겨진 쇠사슬처럼 허망하게 떨어져 나갔다.

그때 아달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와 여호람의 귓가를 간지럽히듯 속삭였다.

그녀의 향기가 코앞에 닿자 여호람의 가슴은 천둥처럼 뛰기 시작했다.

“율법이 저하께 무엇을 지켰습니까?”

아달랴의 음성은 부드럽지만, 의지를 파고드는 칼날 같았다.

“저하의 마음을? 저하의 자리도? 아니지요.”

그녀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두 사제를 향해 손끝으로 가볍게 신호했다.

두 사제는 그 순간, 여호람의 몸을 양옆에서 감싸안듯 붙었다. 살결은 비단처럼 부드럽고, 숨결은 가까웠으며, 그들의 손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여호람의 몸은 뜨겁게 반응했다. 한 사제는 그의 목덜미 가까이에서 깊은 향기를 담은 숨을 조용히 불어넣었다. 두 사제는 농염한 가슴과 허벅지로 여호람의 몸에 밀착하면서 능숙한 손길로 그의 예복을 한꺼풀씩 벗겨 내었다. 마침내 그가 걸친 모든 의복은 그녀들에 의해 모두 벗겨진 순간 여호람은 다리에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달랴는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여호람 바로 앞에 섰다. 그녀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눈빛과 숨결로 이미 그의 몸을 장악하고 있었다.

“보세요, 저하. 힘이란 이런 것입니다.”

그녀가 아주 낮게 속삭였다.

“스스로 잡는 것이 아니라— 열리고 싶어지는 문을 여는 것.”

두 사제는 여호람의 몸에 입술과  가슴을 밀착하고 부드럽게 어루 만지면서  마지막 그의 이성을 녹여내고 있었다. 그 손길은 점점 노골적이며 여호람의 깊은 욕망을 끌어내는 유혹을 담고 있었다. 여호람은 더는 이성의 끈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향과 숨결과 손길 속에서 섞여 흐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목소리가 낮고 약하게 새어 나왔다.

“…당신을… 따르겠소.”

그 말 한마디가 떨어지자 아달랴의 입가에는 짧지만, 분명한 미소가 스쳤다.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이 흐름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하를 잘 모시세요.”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는 명령이 아니라 축복처럼 들렸다. 두 사제는 여호람의 팔을 좌우에서 잡아 천천히 붉은 장막 안으로 이끌었다. 그 장막은 바람 한 줄기 없이 고요했지만, 안쪽에서는 이미 향과 숨결이 뒤섞여 새로운 왕국의 그림자가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달랴는 그 장면을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다가 작게 속삭였다.

“저하 이것은 이제 첫걸음입니다, 저하. 오늘을 마음껏 그냥 즐기세요.”

그리고 달빛은 그 장막을 피하듯 조용히 비껴갔다.

3장. 노신의 죽음

왕궁의 밤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바람 앞에서 등불이 꺼지기 직전의 불길한 적막이었다. 왕궁의 원로이자 여호람의 스승 엘리야후는 그 적막 속에서 먼저 이상함을 느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가 달랐다. 향과 뒤섞인 피 냄새 그리고 이방 제사에서나 맡을 법한 눅진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신성한 왕궁에 이게 무슨 냄새란 말인가…?”

그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밤 걸음을 재촉해 왕비의 처소 뒤편, 출입이 금지된 뒤뜰로 향했다. 달빛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엘리야후는 낯선 풍경을 보았다. 붉은 갑옷의 병사들이 조용히 짐수레를 내리고 있었다. 그 짐수레에는 길쭉하고 괴상한 신상들과 피가 든 항아리와 그리고 알 수 없는 향초들로 가득 실려 있었다. 그는 오래된 나무처럼 굳은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

“…바알의 신상이라니. 이 신성한 예루살렘에서.”

오랫동안 벼려진 눈빛에 분노가 일었고, 노구임에도 그의 걸음은 전쟁터를 누비던 젊은 시절처럼 거칠어졌다. 그는 증거로 삼을 헝겊 조각 하나를 움켜쥐고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디선가 금속이 닿는 듯한 얇은 소리가 들렸다.

“밤중에 너무 깊이 오셨습니다.”

엘리야후가 몸을 돌렸을 때, 칼라이가 이미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달빛 아래 선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고,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엘리야후는 품에 손을 넣으며 호통을 쳤다.

“감히 왕궁에서 이런 짓을! 내 지금이라도 근위대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라이의 손이 허공을 스치며 작게 떨렸다.

슉—

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엘리야후는 한순간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목에 뜨거운 기운이 번지고, 숨이 막히며 무릎이 꺾였다.

그때

그의 시야 끝에서 여인의 옷자락이 높이 보였다. 아달랴였다. 그녀는 2층 난간에 서서, 포도주잔을 든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 같았다. 엘리야후는 흐려지는 시야로 그녀를 보며 마지막 힘으로 입술을 떨었다.

“…왕…을… 뵈어야…”

그러나 그의 말은 끝에 다다르지 못했다. 아달랴는 찻잔을 내려놓듯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흔적을 지우세요.”

그녀의 명령은 짧고 간단했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칼라이는 쓰러진 노신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목을 꺾어버렸다. 엘리야후의 몸에서 마지막 숨이 빠져나가자, 아달랴는 조용히 걸음을 돌리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 왕국에는 오래된 뿌리가 많아. 그 뿌리를 잘라내야 새싹이 자라지.”

그녀의 목소리는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채 달빛에 흩어졌다. 그날 밤 예루살렘의 달은 평소보다 붉었다. 그리고 그 붉음이 왕국에 닥쳐올 시대를 예고하듯, 묵묵히 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편 끝-]]></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Fri, 18 Sep 2026 14:33: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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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2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여호사밧 왕편 4/4]]></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23]]></link>
			<description><![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두 번째 이야기

여호사밧(유다 4대왕):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4/4편)

제9장. 금빛 유혹 (에시온게벨의 동맹)

브라가 골짜기에서의 그 기이하고도 장엄했던 승리는 유다 땅에 실로 오랜만의, 그리고 완벽한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오직 찬송과 믿음만으로 거대한 연합군을 자멸케 한 이 사건은 주변 열강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국경을 넘보는 자는 사라졌고, 조공을 바치는 행렬은 끊이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의 창고는 넘쳐나는 전리품으로 비좁을 지경이었다.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며 왕의 지혜와 경건함을 칭송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에게 있어 고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 시험은 바로 번영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는 그토록 예민하게 곤두서 있던 영적인 감각들이, 배가 부르고 등 따스한 평화가 지속되자 마치 기름진 비계에 덮인 듯 서서히 무디어져 갔다. 여호사밧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경건한 군주였으나, 동시에 나라의 부강함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통치자이기도 했다.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솔로몬 시대의 영화를 재현하고픈 세속적인 야망이 안개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한 왕의 내면을 꿰뚫기라도 한 듯, 북이스라엘로부터 사절단이 당도했다. 아합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하시야가 보낸 자들이었다. 그들은 세련된 비단옷을 걸치고 유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능수능란한 외교관들이었다. 왕궁의 내밀한 접견실, 여호사밧은 왕세자 여호람과 함께 그들을 맞이했다. 그 자리에는 여호람의 아내이자 북왕국 아합의 딸인 아달랴도 배석해 있었다. 그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그 눈빛만은 사절단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번뜩이고 있었다. 사절단 대표가 지도를 펼쳐 보이며 은밀한 어조로 말했다.

"유다의 왕이시여, 우리 왕 아하시야께서 형제국의 평안을 비옵니다. 왕께서 거두신 위대한 승리는 사마리아 성벽 너머까지 전설처럼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오나 왕이시여, 칼로 얻은 평화는 지키기가 어려우나 재물로 맺은 평화는 쇠보다 단단한 법입니다. 이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끊어졌던 황금의 뱃길을 다시 열 때가 되지 않았나이까?"

그가 가리킨 곳은 홍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에시온게벨 항구였다. 과거 솔로몬 왕이 오빌의 금을 실어 날라 예루살렘을 황금으로 도배하게 했던 바로 그 전설의 항구였다.

"에시온게벨이라..."

여호사밧이 나직이 읊조렸다. 솔로몬의 영광. 그것은 모든 유다 왕이 꿈꾸는 이상향이자, 다윗의 길을 걷는 여호사밧에게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사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저희 북이스라엘에는 두로와 시돈의 뛰어난 조선 기술과 노련한 뱃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다 왕께서는 항구와 자본을 대시면, 저희가 배를 짓고 바다를 건너 무역 길을 열겠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막대한 이득을 나눈다면, 두 나라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능가하는 부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두 나라가 오랜 경쟁에서 벗어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로가 사는 상생(相生)의 길입니다."

여호사밧은 침묵했다. 그의 머리는 이것이 합리적인 제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영혼 깊은 마음속 한 곳에서는 미가야 선지자의 경고가, 그리고 라못 길르앗 전투에서의 치욕스러운 기억이 희미하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아합의 가문과 또다시 같이 큰일을 도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왕의 침묵이 길어지자, 곁에 있던 여호람이 조바심을 내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 무엇을 그리 망설이십니까? 이것은 사마리아의 우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의 기술을 빌려 국고를 채우는 일일 뿐입니다. 백성들은 더 풍요로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주변국들이 먼저 저 기회를 차지할지도 모릅니다."

여호람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 뒤에는 아내 아달랴의 입김이 서려 있음을 여호사밧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달랴가 조용히, 그러나 뼈 있는 한마디를 거들었다.

"아버님, 세상의 재물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라 배웠습니다. 악한 자들의 기술이라 하여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한 도구로 삼아 유다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가 아니겠나이까. 평화를 지키는 힘은 곧 국력에서 그 국력은 자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녀의 논리는 치밀했고 반박하기 어려웠다. '배를 만들어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역하는 것이다.' '신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국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명분들은 여호사밧의 내면에서 꿈틀대던 신앙적 양심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저들의 바알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냥 배만 띄울 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태평성대에 백성들을 더 배불리 먹이는 것이 왕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긴 침묵 끝에 여호사밧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서 영적인 긴장감이 사라지고, 대신 현실 정치의 계산이 그 자리를 채웠다.

"좋소. 아하시야 왕의 제안을 수락하겠소. 에시온게벨에 조선소를 세우고, 남과 북이 합작하여 다시스 선을 건조하도록 하시오. 우리가 필요한 자본을 대겠소"

여호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아달랴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절단은 엎드려 왕의 결단을 찬양했다. 왕궁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로 들썩였으나, 그 결정이 가져올 파국을 예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담보로 벌이는, 위험천만한 도박의 시작이었다.

제10장. 부서진 배 (엘리에셀의 예언)

여호사밧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에시온게벨은 천지개벽하듯 변모했다. 적막했던 항구 도시는 순식간에 거대한 조선소로 바뀌었다. 북이스라엘에서 내려온 기술자들과 유다의 일꾼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었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실은 수레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망치 소리, 톱질 소리, 그리고 뱃사람들의 거친 노랫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건조되는 배들은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다시스 선'이었다. 먼 바다의 거친 파도를 견딜 수 있도록 선체는 육중하게 설계되었고,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돛대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호사밧은 틈나는 대로 예루살렘을 비우고 에시온게벨로 내려와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거대한 용골이 놓이고 갑판이 깔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저 배들이 오빌의 황금을 가득 싣고 돌아오는 날, 유다는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거듭날 것이라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공사 현장 어디에도 하나님을 위한 제단은 없었다. 오히려 북쪽에서 온 기술자들은 뱃머리와 안쪽에 바다의 신을 달래는 부적과 풍요의 신의 형상들을 몰래 새겨 넣었고, 선원들은 출항의 안전을 빌며 이방 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여호사밧은 그것을 보았으되 못 본 체했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 정도 사소한 것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영적으로 흐려진 왕은 사탄의 달콤한 속삭임을 깨닫지 못했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수십 척의 거대한 상선들이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항구에 도열해 있었다. 출항을 하루 앞둔 에시온게벨은 축제 분위기였다. 해변에는 거대한 연회장이 차려졌고, 술과 고기가 넘쳐났다. 여호사밧은 높은 단상에 앉아 그 위용 넘치는 선단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치세가 정점에 달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축제의 소란을 뚫고 한 노인의 칼날 같은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왕이시여, 이 배들이 어디로 가는지 진정 아시나이까?"

연회의 흥겨움이 일순간에 멈췄다. 여호사밧이 놀라 고개를 돌리니, 남루한 베옷을 입은 선지자, 마레사 사람 엘리에셀이 서 있었다. 그의 몰골은 초라했으나, 눈빛만은 브라가 골짜기에서 승리를 예언했던 야하시엘의 눈동자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깊은 슬픔과 서릿발 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대 누구인가? 이 경사스러운 날에 어찌 불길한 말을 하는가."

여호사밧의 불쾌 섞인 물음에도 엘리에셀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그는 앙상한 손가락을 들어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상선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왕께서는 여호와를 의지하여 암몬과 모압의 대군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때 왕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믿음이었고, 왕의 방패는 창이 아니라 찬송이었습니다. 하오나 지금 왕이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 썩어질 나무 조각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교활한 술수입니까?"

"이것은 백성을 위한 일이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어찌 죄가 된단 말이냐?"

여호사밧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자신의 정당성을 부정당한 데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엘리에셀의 다음 말은 왕의 폐부를 찌르는 천둥과도 같았다.

"왕이 악한 자와 교제하고,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었으니, 여호와께서 왕이 애써 만든 것들을 파하실 것입니다. 들으소서! 저 배들은 결코 오빌에 닿지 못할 것이며, 금 한 조각도 왕의 손에 쥐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왕을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징계이자 경고입니다!"

예언을 마친 엘리에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여호사밧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으나, 그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아니다. 저토록 견고한 배가, 저토록 완벽한 준비가 어찌 실패한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오판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날 밤, 거짓말처럼 하늘이 뒤집혔다. 맑았던 밤하늘에 갑작스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태풍 보다도 더 거대한 소용돌이 돌풍이 항구를 덮쳤다. 그것은 일반적인 폭풍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바다를 휘젓는 듯했다.

"콰아아앙! 우지끈!"

닻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거대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정박해 있던 배들을 강타했다. 서로 묶여 있던 배들은 파도에 밀려 서로의 옆구리를 들이받으며 처참하게 부서져 나갔다. 선원들은 혼비백산하여 배를 구하려 했으나, 인간의 힘으로 막기에는 자연의 분노가, 아니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나 거셌다.

여호사밧은 숙소의 창문을 통해 그 참상을 지켜보았다. 번개가 칠 때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다시스 선'들이 장난감처럼 부서져 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돛대는 꺾여 바다로 처박혔고, 황금의 꿈을 실어 나를 선체는 산산조각이 나 파도 위를 떠돌았다. 적군의 침입도, 화재도 아니었다. 오직 바람과 물결만이 그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여호사밧은 창틀을 붙잡은 채 주저앉았다. 부서지는 배들의 굉음 속에서 엘리에셀의 예언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이다..."

그제야 왕은 깨달았다. 무너져 내린 것은 배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 세우려 했던 자신의 교만과 야망이었음을.

제11장. 거절과 회복 (마지막 결단)

폭풍이 지나간 에시온게벨의 아침은 처참했다. 해변은 부서진 널빤지와 찢어진 돛, 그리고 주인 잃은 밧줄들로 뒤덮여 마치 거대한 배들의 무덤과도 같았다. 지난밤의 화려했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모래사장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여호사밧은 시종들을 물리치고 홀로 그 폐허 위를 걸었다. 바닷물에 젖은 나무 조각 하나를 집어 든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솔로몬의 영광을 꿈꾸었던 그 나무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때, 북이스라엘 아하시야 왕이 급파한 전령이 왕 앞에 당도했다. 그는 파선된 배들을 보며 혀를 찼으나, 곧 아하시야의 새로운 제안을 전했다. 아하시야는 이 정도의 실패에 굴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매달렸다.

"유다 왕이시여, 자연재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 주 아하시야 왕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배를 다시 만듭시다. 이번에는 내 종들을 당신의 종들과 함께 배에 태워 가게 하라. 우리의 노련한 뱃사람들이 배를 조종한다면 어젯밤 같은 불행은 다시 없을 것이다.' 왕이시여, 자본은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여호사밧은 전령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하시야의 제안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이제는 아예 북이스라엘의 사람들이 배의 운항을 주도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 유다의 해상권을 북이스라엘과 공유하자는, 아니 사실상 넘겨달라는 요구와 다름없었다. 예전의 여호사밧이었다면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체면 때문에라도 이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여호람 역시 옆에서 "아버님, 이번만은..."이라며 눈빛을 보낼 터였다.

허나 폐허가 된 해변에 서 있는 여호사밧은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부서진 배의 파편 앞에서 뼈아픈 회개를 마친 후였다. 지난밤의 폭풍 속에서 그는 보았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길을 억지로 가려 할 때, 그 끝에는 파멸밖에 없음을. 아무리 많은 재물을 얻는다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임을 뼛속 깊이 깨달은 것이다.

여호사밧은 고개를 들어 전령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브라가 골짜기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던 그 경건한 왕의 기개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돌아가서 네 주군에게 전하라."

왕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우리는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 배는 다시 만들지 않을 것이며, 오빌의 금은 내게 필요치 않다."

전령은 당황하여 재차 설득하려 했다.

"왕이시여, 막대한 손해를 그냥 매몰 처리하시렵니까? 조금만 더 투자하면 이 손실을 모두 만회하고 막대한 황금이..."

"물러가라!"

여호사밧의 호령이 해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재물을 잃었으나 믿음을 되찾았다. 더 이상 악한 자와 멍에를 같이 하여 내 하나님을 진노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대답이다."

전령은 왕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황급히 물러갔다. 여호사밧은 그가 사라진 텅 빈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비록 국고는 비었고 배는 부서졌으나, 그의 마음에는 실로 오랜만에 참된 평안이 찾아왔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성공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혼의 안식이었다.

이 거절은 여호사밧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결단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었다. 그는 실패를 딛고 일어섰으며, 인간적인 관계나 정치적 이득보다 신앙의 정절을 택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비록 손에 쥔 금은 없었으나, 그는 하나님이라는 가장 귀한 보물을 다시 얻은 것이다.

제12장. 다윗 성에 잠들다 (에필로그)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여호사밧이 유다를 다스린 지 25년이 되었다. 그의 나이 육십 세. 치열했던 삶의 여정도 이제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왕의 육신은 쇠약해졌으나, 그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투명했다. 그는 자신이 곧 열조에게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임종을 앞둔 어느 늦가을 밤, 여호사밧은 아들 여호람을 침상 곁으로 불렀다. 촛불이 일렁이는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왕은 힘겹게 눈을 떠 아들을 바라보았다. 장성한 아들의 얼굴에서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보았고, 동시에 며느리 아달랴의 그늘을 보았다. 그것이 왕의 마음을 아프게 짓눌렀다.

"내 아들아..."

갈라진 목소리로 왕이 불렀다. 여호람이 황급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예, 아버님. 말씀하소서."

"나는 이제 다윗 조상님 곁으로 간다. 내 떠나기 전에, 네가 평생 가슴에 새겨야 할 한 가지를 전하려 하니 부디 명심하거라."

여호사밧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서렸다.

"나는 왕으로 살며 두 가지 길을 모두 걸어보았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분의 율법을 따랐을 때, 하나님은 전쟁 중에도 나를 살리셨고 찬송만으로 적을 물리치게 하셨다. 나라는 평안했고 백성은 복을 누렸다. 허나..."

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사람을 의지하고, 정치적 이득을 위해 악한 자들과 손을 잡았을 때... 라못 길르앗에서의 치욕과 에시온게벨에서의 파선을 너도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 없는 번영은 모래성보다 약하고, 불의한 자와의 동맹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여호람은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아들의 눈빛 깊은 곳에서 여전히 꿈틀대는 야망을 읽을 수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신앙보다는 아내 아달랴의 정치력을 더 신뢰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이 여호사밧의 마지막 슬픔이었다.

"왕의 자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세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리다. 부디... 북쪽의 길을 따르지 말고, 다윗의 길을 가라. 이것이 아비의 마지막 소원이다."

여호사밧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날 무렵, 왕의 손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위대한 개혁가이자, 때로는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넘어지기도 했던 유다의 제4대 왕 여호사밧은 그렇게 평안히 눈을 감았다. 향년 60세였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온 유다 땅은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백성들은 진심으로 슬퍼하며 그를 다윗 성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했다. 후대의 사가(史家)들은 그를 이렇게 기록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던 왕.' 비록 그에게도 허물은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셨고 그가 남긴 믿음의 유산은 유다 왕조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장례 행렬 뒤에는 기이한 적막이 흘렀다. 그 고요는 평화의 안식이 아니라, 다가올 거대한 폭풍 전의 숨죽임과도 같았다. 그 중심에는 새 왕 여호람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아달랴가 있었다. 모두가 울고 있었던 장례 행렬에서 유일하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는 다윗 성의 높은 탑들을 천천히 훑으며,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독사처럼 섬뜩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달랴의 입가에 스친 서늘한 미소 속에 장차 유다 왕실을 집어삼킬 잔혹한 도살의 칼날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호와의 높으심을 찬양하던 브라가 골짜기의 찬송 소리는 바람에 흩어지고, 그 빈자리에 검붉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노래하던 유다 왕국에, 이제 곧 비명과 선혈이 낭자한 끔찍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끝)]]></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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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8 Sep 2026 12:49:56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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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교류회로와 수동 소자 고주파 해석 보충자료202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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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Sep 2026 08:29:3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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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Sep 2026 15:54:5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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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26 1일차 강의 교재 개정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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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Jun 2026 13:5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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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3 Nov 2025 17:06:35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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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2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여호사밧 왕편 3/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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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두 번째 이야기

글: 주성준 지음

-여호사밧(유다 4대왕):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3/4편)

<b>제</b><b>7</b><b>장</b><b>. </b><b>다가오는 전운</b><b>(</b><b>戰雲</b><b>)</b><b>의 그림자 </b>

예루살렘 궁전 문을 마구 달려서 말에서 내린 전령의 얼굴은 이미 흙빛이었고, 그의 옷자락에는 먼지가 풀풀 묻어 있었다. 그는 왕궁으로 곧장 달려 들어와 마침내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숨이 거칠게 들고 나는 사이, 그의 음성은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왕이시여…! 사해 건너 동편에… 모압과 암몬이 큰 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세일 산의 족속까지 더해져, 그 군대는 지금 에난골 하사손다말까지 밀려들고 있사옵니다. 그 수효는 바다의 모래와도 같아 헤아릴 수 없나이다.”

여호사밧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왕의 눈빛은 무겁게 깔린 먹구름처럼 어두워졌으나, 곧 떨림 없는 목소리가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확실한 소식이더냐? 혹 흉흉한 소문만을 좇아 내 앞에 서지 않았느냐.”

전령은 왕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몸을 더 낮추었다.

“폐하, 여호와께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두고 맹세하오니 제가 직접 본 그들의 진영은 산을 덮고, 들을 메우며, 그 장막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순간 궁정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대신들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병사들의 어깨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여호사밧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잠시지만 두려움이 스쳐갔다.

왕은 말없이 창가로 걸어가 커다란 청동 창틀을 열어젖혔다. 예루살렘 성벽 너머로는 여전히 평화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으나, 그의 눈에는 그것이 곧 뒤덮일 먹구름의 전조처럼 보였다.

“어찌 이리도 큰 무리가 우리를 에워싸려 하는가. 우리에게 허락된 평화가 이제는 무너져 내리는 것인가?”

하지만 그의 가슴 한복판에서 불현듯 오래전 선조들의 이야기가 살아나듯 울려 퍼졌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기드온에게 하셨던 그 말씀들이 마치 지금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여호사밧은 눈을 감았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면, 군인의 숫자는 아무 의미 없음을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성 밖은 이미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게 번졌다. 시장의 상인들은 손에 쥔 저울을 놓아버리고 서로의 소매를 붙잡았다.

“들었는가? 모압과 암몬이 몰려온다더라! 그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다지 않는가!”

“이제 우린 끝장이야. 성벽이 무슨 소용인가, 그 수많은 병사 앞에!”

여인들은 집안으로 달려 들어가 부엌의 곡식 자루를 움켜쥐고는 울부짖었다. 젖먹이를 품은 어머니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떨고 있었고,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함께 울었다.

절망의 말이 퍼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성안은 북소리도 없이, 전쟁터보다 더한 소란과 혼란으로 뒤덮였다. 백성들의 공포는 비바람이 되어 도시의 전역에 휘몰아 치고 있었다.

여호사밧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왕관을 벗고 왕좌를 내려와, 백성과 함께 성전으로 향했다. 화려한 금빛 비단 대신 거친 베옷을 걸치고, 장중한 행렬의 선두에 선 모습은 더 이상 화려한 군주가 아니라, 여호와 앞에 무릎 꿇은 한 인간에 불과했다.

“온 나라 온 백성은 지금 즉시 금식하고 모두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 하라.”

그의 짧은 명령이 예루살렘 성안에 메아리쳤다. 곧 성전 뜰은 눈물로 가득 찬 회중으로 메워졌다. 여호사밧은 제단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하늘로 치켜올린 그의 어깨는 떨렸으나,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절박한 믿음의 떨림이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 여호와시여! 주께서 하늘과 땅의 주재가 아니시나이까? 주께서 모든 나라와 열국을 다스리시심을 믿습니다. 이제 저 크고 거대한 무리가 우리를 치러 왔으니, 우리가 그 앞에 설 힘이 없나이다. 오직 우리의 눈은 주만 바라보나이다.”

그 음성이 성전 뜰을 가득 메우자, 사람들의 흐느낌마저 순간 멎었다. 숨소리 하나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가 성전 위로 내려앉았다. 절망과 두려움이 무릎 꿇은 자리에서 기도로 바뀌었고, 온 백성의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 제단 앞에 모여들었다. 예루살렘은 이제 칼과 창이 아니라, 기도와 눈물로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b>제</b><b>8</b><b>장</b><b>. </b><b>여호와의 전쟁</b>

그 때였다. 성전 한쪽에서 웅성거림이 일더니, 회중 가운데 서 있던 한 사람이 돌연 일어섰다. 그는 아삽 자손 레위 사람, 야하시엘이었다. 눈빛은 불길처럼 타올랐고,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왕이시여, 들으소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 울림은 천둥처럼 성전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숨을 죽였다. 야하시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외쳤다.

“내일 그들을 맞서 내려가라. 너희가 칼을 들고 싸울 것이 아니요, 그저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리라.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 순간, 성전 안은 전율로 가득 찼다. 여호사밧은 얼굴을 돌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왕이 먼저 무릎을 꿇자, 장로와 백성도 일제히 몸을 굽혔다. 통곡은 찬송으로 변했고, 두려움은 신뢰로 바뀌었다.

찬양대가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자, 성전 기둥들이 울림을 따라 떨렸다. 절망으로 시작된 그 모임은, 이제 승리의 전주곡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 예루살렘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칡흑 같은 어둠이었으나 동쪽 하늘 끝은 어렴풋이 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성문 밖으로 늘어선 대열은 한 나라의 모든 숨결을 모아놓은 듯 장중했다. 그 행렬 앞에 앞장선 것은 칼을 든 장수들이 아니었다. 흰 예복을 입은 찬양대가 나아가며 비파와 수금을 어깨에 멨고, 제사장의 나팔은 아침 공기를 가르며 길게 울려 퍼졌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찬양의 음성이 메아리쳐 예루살레 성을 채우자, 군사들의 발걸음은 하나로 맞추어졌다. 그들의 손에는 창과 방패가 들려 있었으나, 시선은 이미 하나님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전열은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단단히 엮였고, 도성의 사람들은 성벽 위에서 숨죽여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여호사밧은 여전히 베옷을 입은 채, 말 위에 올랐다. 그는 백성의 선두에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큰소리로 기도했다.

“주여, 우리의 힘은 미약하나, 우리의 노래는 크나이다. 오늘 이 전쟁을 통해 주께서 홀로 하나님 되심을 만방에 드러내소서.”

그의 기도는 함성도 북소리도 아니었으나, 모든 군사들의 가슴에 불길처럼 번져갔다. 누구도 주춤하지 않았고,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찬양대의 노래는 더욱 힘차게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칼날보다 날카로웠고, 창끝보다도 빛났다. 군사들의 발걸음은 새벽의 공기와 함께 전장을 향해 물결처럼 흘러갔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의 행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믿음의 행진이었고, 하나님께 속한 전쟁을 향한 장엄한 예식이었다. 유다의 행렬이 하사손다말 골짜기 어귀에 다다랐을 때, 창끝은 아직 번쩍이지 않았고 활시위는 당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산등성이 너머로 끝없이 보이는 압도적인 적의 모습은 숨을 멋게 했다. 찬양대의 찬양 소리도 멈추었다. 모압과 암몬, 그리고 세일 산의 족속이 세운 장막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를 메운 수많은 깃발은 바람에 부딪혀 물결처럼 요동쳤다. 유다의 병사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갑자기 찬양대는 북을 치며 나팔을 불고 큰소리로 찬양을 시작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 노래가 골짜기 깊숙이 메아리친 순간, 적진에서 모압의 장수와 수백의 기병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른 새벽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아, 골짜기 아래의 움직임은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병참을 싣고 급히 달려오던 암몬의 보급 마차 행렬이 모압 진영 옆으로 막 지나가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바퀴와 수많은 말발굽 소리가 갑자기 옆에서 터져 나오자, 모압 장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귀에는 여전히 유다의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순간, 안개와 먼지 사이로 나타난 암몬의 보급 행렬은 마치 이스라엘의 기습대처럼 보였다. 모압 장수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기습이다! 적의 기습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허리에 찬 창을 뽑아 들었다. 군마의 거친 숨결 위로 팔을 높이 들어, 제일 앞에 서 있던 암몬 장수를 향해 번개처럼 던졌다. 창끝은 안개를 가르며 날아가 곧장 그 가슴을 꿰뚫었다. 장수는 피를 토하며 말 위에서 나자빠졌고, 나머지 병사들도 보급 마차를 향해 창과 화살을 비오듯 쏟아 부었고 보급 마차는 그 자리에서 기울어 곡식 자루를 쏟아냈다. 갑작스런 피의 참상에 놀란 암몬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말을 돌렸다. 겨우 살아남은 몇 명의 병사들은 죽은 동료 시신을 뒤로 한 채 본진을 향해 달아났다.

“모두 나를 따르라! 저들을 놓치지 마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모압 장수는 즉시 명령을 내렸고, 기병들이 말을 달려 도망치는 암몬 병사들을 추격했다. 겨우 살아서 본진에 도착한 암몬의 병사는, 숨이 턱에 차오른 채 피 묻은 얼굴로 외쳤다.

“모압이 우리를 속였다! 모압이 우리 장수와 병사들을 죽였다!”

그 외침은 불길처럼 본진을 덮쳤다. 암몬의 병사들은 마치 들판에 불이 붙듯 일제히 무기를 빼들었다. 쫓아온 모압 기병과 맞부딪히자 방패와 방패가 부딪히며 철성이 골짜기를 울렸고, 칼과 창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모압 진영 또한 뒤늦게 달려들었다. 유다 군으로 믿고 있는 적병들을 추격하던 자신들의 정예 기병들이 암몬 진영에서 차례로 살해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병사들은 우르르 전장으로 쏟아져 들어와 암몬과 맞붙었다. 피가 튀는 자리마다 비명이 메아리쳤다. 한때 동맹을 맺고 함께 진군하던 군사들은 이제 서로의 심장을 겨누며 악귀처럼 싸웠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세일 산의 족장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양 진영의 다툼을 믿을 수 없는 듯 서서 지켜만 보았다. 그러나 피가 강처럼 흐르고, 모압과 암몬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모습이 길게 이어지자, 그의 가슴에도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저 싸움은 결국 우리를 향한 음모다. 우리가 다음 차례일 것이다.”

불안은 곧 의심으로, 의심은 공포로, 공포는 살기로 변해갔다. 그는 이를 갈며 칼을 뽑아 들었다.

“우리가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먼저 치라!”

순식간에 세일 산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모압과 암몬 양 진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불길은 더 이상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세 개의 군대는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피비린내 나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었다. 북소리는 전진의 신호가 아니라 곡소리가 되었고, 땅은 군사들의 피로 젖어 진흙탕으로 변했다. 연합은 산산이 부서졌고, 각자의 칼끝은 더 이상 공동의 적을 향하지 않았다. 모두가 모두를 적으로 삼은 광란의 전장이 골짜기를 집어삼켰다. 산 너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유다의 군사들은 숨을 삼키며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이 겨누지 않은 화살에서, 그들이 휘두르지 않은 칼날에서, 적군은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여호사밧은 말 위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그의 눈빛은 놀람이 아니라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

“참으로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도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맹군은 서로의 칼끝에 쓰러졌고, 골짜기는 시체로 메워졌다. 아침 해가 높이 떠오르기도 전에, 적진은 산산이 흩어져 아무도 남지 않았다.

유다의 군사들은 조심스레 전장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맞설 적은 없었다. 그들의 손에 쥔 것은 적의 목이 아니라, 쓰러진 자들이 흘리고 간 전리품이었다. 금과 은, 값진 의복과 무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흘 동안이나 그들은 전리품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입술에 끊이지 않은 것은 재물의 노래가 아니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 승리는 칼이 세운 것이 아니었다. 찬양이 무기가 되었고, 믿음이 방패가 되었으며, 여호와의 손길이 전장을 가르셨다. 단 한명의 사상자도 없었던 그들의 행렬은 군대의 귀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이 베푸신 구원의 축제를 향한 행렬이었고, 성문 위에 모여든 백성들은 눈물로 환호했다. 온 도성은 그날 저녁까지 찬양으로 진동했다. 여호사밧은 성전 계단 위에 서서 그 광경을 굽어보았다. 백성들의 눈물과 웃음이 한데 섞여 강처럼 흘러내렸고, 어린아이의 입술마저 “여호와께 감사하라”를 되뇌고 있었다. 왕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기쁨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주여, 이 전쟁은 내 손으로 이긴 것이 아니오니, 이 승리가 내 이름을 높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이름만을 드높이게 하소서.”

그의 속삭임은 환호성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으나, 하늘은 그 기도를 받아 적막히 품었다. 그날 이후 유다의 땅에는 한동안 평화가 깃들었고, 그 평화는 전쟁의 공포가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구원의 기억 위에 굳게 세워졌다. -두 번째 이야기
<ul>
 	<li>계속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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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20 Oct 2025 13:33: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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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2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여호사밧 왕편 2/4]]></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15]]></link>
			<description><![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두 번째 이야기

글: 주성준

-여호사밧(유다 4대왕):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2/4)

<b>4. 다가오는 전쟁의 불꽃</b>

유다 왕국은 왕자와 왕자비의 결혼식 이후 몇 년간 평화로운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화의 장막 뒤로, 불길한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했다. 북쪽의 북이스라엘에서 온 사신들이 예루살렘 궁전의 대리석 복도를 지나 왕좌로 다가왔다. 그들의 옷자락은 진홍색과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고, 목에는 빛나는 장식품이 걸려 있었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여호사밧은 왕좌에 앉아 침착한 표정으로 사신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그들의 화려함 너머로 숨어 있는 의도를 꿰뚫으려는 듯 깊었다. 마침내 사신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속에 감춰진 무게를 지우지는 못했다.

"위대한 유다의 왕이시여,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께서 폐하께 간곡히 요청하십니다. 출애굽 후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지금 적국에게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여 두 왕국의 강력한 동맹을 강화하고자 하오니, 폐하께서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사신의 말이 끝나자, 궁전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여호사밧은 왕좌에 깊이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길르앗 라못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지만 유다 왕국과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로 이를 되찾는 것은 북이스라엘의 안정에 도움이 되고 그에 따라 두 나라에게 이익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합의 제안은 단순한 군사적 협력 이상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 틀림없었다. 잠시 후, 여호사밧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결단을 내렸다. 그의 목소리는 왕국의 대리석 벽을 타고 은은히 울렸다.

"함께 나가겠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을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사신들은 고개를 숙이며 그의 결정을 환영했으나, 그들 눈빛에는 어디선가 불안한 빛이 어른거렸다. 여호사밧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동맹은 유다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며칠 뒤,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을 향해 떠났다. 그가 길르앗 라못으로 나가는 여정의 시작점은 화려한 사마리아의 궁전이었다. 궁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여호사밧은 궁전의 대문을 지나며 속으로 속삭였다.

"주님, 이 화려함이 유다를 어둠으로 이끄는 유혹이 아니길 바라옵니다."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들을 불러 모두 승리를 예언하게 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마음은 불편했다. 그는 아합에게 물었다.

“여호와의 참된 선지자는 없습니까?”

아합은 마지못해 미가야를 불렀다. 미가야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이시여, 만일 전쟁에 나가신다면, 이스라엘은 패배할 것이고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아합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자를 감옥에 가두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물과 빵만 주라!"

미가야는 마지막으로 돌리고 돌려서 말했다.

"만일 왕께서 무사히 돌아오신다면, 내가 들은 말씀은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그의 말은 궁전의 대전 안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여호사밧은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깊은 갈등에 빠졌다. 그는 아합과의 동맹이 불안했지만, 이미 결정한 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b>5. 길르앗 라못 전쟁</b>

여호사밧과 양국의 군대는 미가야의 예언을 마음 깊이 새기며 길르앗 라못으로 향했다. 사마리아를 떠날 때 그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검푸른 구름이 서서히 모여들고 있었고, 이는 곧 다가올 폭풍우를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 구름은 하늘과 땅 사이를 메우며, 다가올 전쟁의 비극을 예고하는 듯했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전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끊임없이 여호와를 향한 기도로 가득 차 있었다.

“주님, 이 땅 위에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의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으나, 전쟁터로 몰려가는 병사들의 함성 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반면, 아합은 일반 병사로 변장을 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여호사밧을 살폈다.

“적들이 나를 집중적으로 노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병사로 변장을 할 것이오. .”

그의 말은 겉으론 침착했으나, 속내의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여호사밧은 잠시 그를 응시했다. 아합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고뇌가 섞여 있었다.

“그대의 선택이 승리를 이루는 길이길 바라오.”

그는 간단히 대답하며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전쟁의 신호가 울리자, 북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은 아람 군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먼지와 함성이 뒤엉키며 들판은 순식간에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여호사밧은 왕의 예복을 휘날리며 전장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그의 말굽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적진을 가르듯 나아갔고, 그의 주위에 모인 유다의 병사들은 단단한 방패처럼 그를 호위했다. 그러나 아람 군대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적의 장수가 전장 너머에서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저자가 왕이다! 이스라엘의 왕을 잡아라!"

그 외침은 마치 거대한 북소리처럼 울려 퍼졌고, 아람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호사밧에게로 쏠렸다. 순간, 적의 선봉이 그를 향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창끝이 번쩍이고 칼날이 번개처럼 춤추는 와중에도 여호사밧은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유다의 용사들이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흔들리지 말라!"

그의 외침은 병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지만, 적군의 압도적인 숫자는 결코 쉬이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아람 병사들은 여호사밧을 둘러싸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갔다. 이제 그를 호위하던 군사들은 하나 둘씩 피흘리며 쓰러졌고 어느덧 그의 주변에 적국의 병사들이 간헐적이지만 직접 달려들고 있었다. 말 위에서 왕의 예복을 입은채 칼을 휘두르며 그들을 막아내던 여호사밧은, 점점 숨이 가빠지고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를 공격하는 병사들의 눈에는 적국의 왕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이 깃들어 있었다. 드디어 그를 지키는 마지막 호위군이 완전히 궤멸하려는 순간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외쳤다.

"주님, 부디 함께하시어 저희를 구하옵소서!"

그의 목소리는 칼날과 함성이 가득한 전장을 뚫고 하늘로 사라졌다. 바로 그때, 아람 군대의 선두에 있던 장수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는 아합 왕의 얼굴을 알고 있던 몇 안되는 아람의 장수였다. 그는 여호사밧을 향하던 창을 거두며 고개를 저었다.

"멈춰라! 속았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며 적국의 왕을 잡고자 돌진하던 병사들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선두에 있던 병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왕이 아니라고? 속았다! 함정이다! 빨리 왕을 찾아라!"

소란이 일자, 여호사밧을 향해 창을 들고 돌진하던 그들의 대열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말을 돌리다 부딪혀 넘어지고, 또 누군가는 명령을 내리며 소리치며 우왕좌왕했다. 그 혼란 속에서, 여호사밧은 퇴로를 확보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남아있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방어진을 유지하고 후퇴하라! 적의 혼란을 이용하라!"

유다의 병사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재빨리 대열을 정비하며 일사불란하게 후퇴했다. 아람 군대는 그제야 다시 뒤늦게 쫓아가려 했으나, 그들의 지휘 체계는 이미 흔들려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을 가로막은 듯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결국 추격을 멈추고 발길을 돌렸다.

여호사밧은 사지와도 같았던 전장을 빠져나오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적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여호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주님, 당신의 손길이 이곳에 함께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은혜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생사를 가른 순간을 통과한 자의 깊은 신앙과 안도감이 스며 있었다.

아합은 전투의 후방에서 병사의 옷을 입은 채 숨어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아람 군의 한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그 때 돌풍과도 같은 강한 뒷바람이 불었고 그 화살은 그 돌풍을 타고 멀리 멀리 날아와 아합의 갑옷 틈새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 거리는 아무리 명사수라 하여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거리였다. 그는 피로 물든 손으로 자신의 상처를 억누르며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안에 그의 운명을 비웃는 듯한 침묵이 깃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아합은 전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피는 전차의 바닥을 넘어 땅으로 흘러내렸다. 그의 죽음은 전쟁의 끝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초라한 몰골의 여호사밧과 그의 병사들은 지친 말을 몰아 북이스라엘을 벗어나 유다로 돌아왔다. 그의 심장은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깊은 죄책감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사마리아를 떠나며 그는 마지막으로 머나먼 거리에 있는 황폐한 전쟁터 쪽을 바라보며 미가야 선지자의 경고를 떠올렸다.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제가 다시는 당신의 뜻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b>6. 회개 기도와 유다의 회복</b>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여호사밧은 성전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손은 가슴 위에서 얹어졌고, 눈은 굳게 감겨 있었으나, 마음은 여호와를 향해 간절히 열려 있었다. 성전의 정적 속에서,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그러던 중, 문 밖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 소리는 성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무겁게 메아리쳤다.

마침내 선지자 예후가 나타났다. 그의 눈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고, 목소리는 낮고도 날카로웠다.

"왕이시여,"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여호와를 떠난 자들을 돕고, 악한 자들과 손을 잡으셨나이까? 왕께서 이스라엘의 아합과 동맹을 맺으셨으니, 여호와의 진노가 왕 위에 임할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예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당혹감과 회한이 엇갈렸으나, 그것을 감춘 채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 일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니겠지요? 나는 속죄하며 그의 뜻을 구하고자 합니다."

예후는 잠시 침묵하며 여호사밧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으나, 그 안에는 위로와 희망의 빛도 서려 있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를 찾으셨기에, 그분께서 왕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소서, 유다를 다스리는 자로서 여호와의 공의를 저버리는 순간, 그 축복 또한 잃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여호사밧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성전의 차가운 돌바닥은 그의 무릎 아래에서 무겁게 느껴졌으나, 그의 기도는 점차 가볍고 단순해졌다.

"주님!"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제 잘못을 용서하시고, 유다를 당신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다시는 제 욕심이 당신의 뜻을 가리지 않게 하소서."

어느덧 그의 눈에는 회개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기도를 마친 여호사밧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그는 성전의 깊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여호와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성전의 계단을 내려오며 곧바로 개혁을 시작했다. 각 지역에 재판관을 임명하며 엄숙히 말했다.

“너희는 사람을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대신하여 재판하는 것이다. 공의와 정직으로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행하라.”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그의 눈빛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각 성읍으로 보낼 때에도 그는 마찬가지였다. 두루마리를 그들에게 건네며 명령했다. ‘율법을 가르치라.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을 잊지 않게 하라. 유다는 여호와의 땅이다. 거짓 신들이 설 자리는 없다.’

그의 개혁은 단순한 명령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성읍들을 순회하며 백성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백성들은 그를 환영했고, 여호와의 이름은 다시 한 번 높이 들려 퍼졌다. 어느날 밤, 여호사밧은 왕궁의 발코니에 홀로 서 있었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으나, 그 눈빛은 빛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멀리 예루살렘 성전의 불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유다는 나의 왕국이 아니다. 여호와의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오직 주님의 공의가 통치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밤하늘의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 결의는 유다의 땅에 깊게 새겨졌고, 그의 통치는 여호와의 이름 아래 더욱 굳건히 세워져 갔다.
<ul>
 	<li>두 번째 이야기 중편 끝-</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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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20 Oct 2025 13:27: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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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2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여호사밧 왕편 1/4]]></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14]]></link>
			<description><![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두 번째 이야기

주성준 안수집사

-여호사밧(유다 4대왕):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지킨 왕국 (1/4)
<ol>
 	<li><b>왕국의 새벽과 빛의 탄생</b></li>
</ol>
BC 900년, 남유다 왕국은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미묘한 긴장과 불안이 깔려 있었다. 유다의 3대 왕인 아사 왕의 통치 초반은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찼었다. 그는 산당을 헐고, 아세라 상을 부수며, 심지어 우상 숭배자였던 그의 모후인 마아가를 폐위시키는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인해 예루살렘 성전의 예배는 다시금 중심을 잡았고, 그의 강력한 군사력과 성벽은 나라의 방패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의 통치가 길어질수록, 백성들의 마음은 점차 나태와 방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초기의 개혁 정신은 희미해졌고, 백성들의 신앙은 산당과 우상으로 다시금 기울기 시작했다. 강력한 통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향했던 백성들의 시선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아사는 이러한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였으나, 나날이 쇠약해지는 자신의 몸과 갈등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점차 고립감을 느꼈다. 그의 통치 초반에 타오르던 여호와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으나, 그것은 백성들에게로 더 이상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듯했다.

어느 날 밤, 왕궁의 깊은 적막 속에서 아사 왕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고뇌가 담겨 있었다. 그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 고요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지기가 조용히 들어와 알렸다.

“왕이시여,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왕을 뵙기를 청합니다.”

아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이라 명했다. 곧 문이 열리고, 먼지로 얼룩진 옷을 입은 선지자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긴 여정의 피로가 어리었으나, 그 눈빛만은 사뭇 맑고도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왕이시여,” 선지자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기도와 신실함을 보셨습니다. 곧 왕의 아들이 태어나 유다를 새로운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아사는 한순간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씀이 진정 여호와의 뜻입니까?”

선지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아이는 여호와의 빛이 될 것입니다.”

선지자가 떠난 뒤, 아사는 창가에 선 채로 하늘을 응시하며 조용히 기도했다.

“주님, 그 아이를 통해 우리 유다를 당신께로 돌이켜 주소서.”

몇 달 뒤, 예루살렘의 왕궁은 밝은 햇살로 가득 찬 아침을 맞았다. 긴 산고 끝에, 왕비의 방에서 힘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울음은 마치 오래 억눌렸던 희망이 다시 깨어나는 소리처럼 왕궁에 퍼졌다.

아기는 왕비의 품에 안겨 있었고, 그녀는 지친 얼굴로도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아사 왕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왕비의 곁에 선 아사는 갓 태어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이 아이의 이름은 여호사밧이라 하리라,” 아사는 낮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재판하시고, 우리 유다를 그의 빛으로 인도하시리라.”

왕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띠었다. 아기는 아사의 손가락을 움켜쥐며 마치 그의 말을 받아들이겠노라 약속이라도 하듯 응답했다.

“여호사밧,” 아사는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왕국의 미래를 향한 깊은 소망이 담겨 있었다.

“이 땅 위에 여호와의 정의를 새길 자여, 너의 이름이 유다를 빛으로 이끌리라.”

여호사밧은 왕궁의 화려함 속에서도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의 유년기는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아사 왕은 아들을 데리고 성벽 위로 올라가 멀리 북이스라엘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들아, 저 땅을 보아라. 그들은 한때 우리의 형제였으나, 이제는 여호와를 떠나고 말았단다. 너는 절대 그들과 같은 길을 것지 않도록 명심해야 된다.”

여호사밧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빛에는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순수함과 함께 결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사는 여호사밧에게 검술과 전술을 가르쳤다. 명석한 여호사밧은 무엇이든 마른 천에 물이 흡수되듯 빠른 시간에 전략가이자 전술가로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깊이 새기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 두루마리를 펼치며 아들에게 말했다.

“왕은 검과 창만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에 대한 믿음과 그의 말씀이 같이해야만 이 나라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어린 여호사밧은 밤마다 부왕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제가 당신의 나라를 당신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도록 저의 길을 안도해 주시옵소서.”

<b>2. 믿음의 왕 여호사밧의 즉위</b>

세월이 흐르고, 아사는 병약해졌다. 그의 병세가 깊어지자, 이제 서른 살이 된 그의 아들을 침대 곁으로 불렀다.

“여호사밧아,” 그의 목소리는 쇠약했으나 단호했다.

“이제 네가 왕위를 이어야 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유다는 여호와의 것이다. 네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검을 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과 여호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날 밤, 아사왕이 눈을 감고 여호사밧은 유다의 새로운 왕으로 선포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백성들이 모여 여호와께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백성들은 새로운 왕의 이름을 외쳤다.

“여호사밧 왕 만세!”

여호사밧이 왕위에 오른 첫날, 그의 추상과도 같은 왕으로서의 첫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유다는 여호와의 땅이다. 이 땅 위에 거짓 신들은 설 자리가 없다.”

그는 나라 안의 잡초와도 같이 우후죽순 자라난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을 헐어버릴 것을 명했다. 성전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각 성읍으로 파견되어 율법을 가르쳤고, 여호사밧 자신도 직접 백성들과 함께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높였다. 그의 신앙은 단지 명령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행동으로 뒷받침된 강력한 믿음이었다.

그의 통치 아래 유다는 평화와 신앙의 부흥을 동시에 맞이했다. 여호와의 보호와 은혜가 유다 전역에 뿌리내린 듯 보였다. 당시 유다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작은 왕국이었다. 북쪽으로는 아합 왕이 다스리는 북이스라엘과 시돈, 티레가 자리하고 있었고, 벤하닷이 지배하는 아람이 위협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동쪽에는 모압과 암몬, 서쪽에는 블레셋, 남쪽에는 에돔이 경계를 이루었다. 이들 중 북이스라엘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나라는 바알신을 숭배 하며 유다에 적대적인 나라이고 여호와를 섬기던 북이스라엘 마저도 이세벨 여왕의 영향으로 바알을 섬기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유다는 이 적대적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아사 왕이 남긴 튼튼한 국경 요새와 잘 훈련된 군대는 강력한 방패가 되었고, 아사 왕의 외교적 유산은 유다를 보호하는 전략적 균형점이었다. 더군다나, 아람은 내분으로 약화된 상태였고, 모압과 암몬은 과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외적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여호사밧 자신이었다. 그의 신앙은 유다 백성들을 하나로 묶었고, 그의 지도력은 왕국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굳건히 했다. 여호사밧은 성벽 위에 서서 고요히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주님, 이 나라가 제 손이 아닌 당신의 손에 의해 다스려지게 하소서.”

그의 기도는 단순한 간청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신앙이 온전히 여호와를 향해 있음을 증명하는 맹세이자 결의였다. 그의 치세 동안 유다는 단순히 평화를 누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 아래 다져진 강력한 신앙과 단결의 시대였다.

<b>3. 북이스라엘 이세벨의 딸</b><b>, </b><b>아름다운 공주 아달랴</b>

이 고요한 평화의 한가운데, 북쪽에서 뜻밖의 제안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외교적 요청이 아니라, 유다의 운명을 시험할 묵직한 도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사신을 보내왔다. 사신은 화려하게 장식된 예복을 입고, 머리에는 번쩍이는 장식으로 북이스라엘의 위엄을 과시했다. 그의 등장에 예루살렘 궁전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여호사밧은 왕좌에 앉아 사신을 맞이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사신은 허리를 깊이 굽히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

“유다의 위대한 왕이시여,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께서 평화와 번영의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두 왕국이 하나 되어 강력한 동맹을 이루기를 바라시며, 이를 위해 그의 딸 아달랴와 폐하의 아들 여호람 왕자와 혼인을 제안하셨습니다.”

사신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여호사밧은 순간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과 그 제안의 속내가 교차했다. 아합 왕은 강한 군대를 가진 명석한 정치가였지만, 그의 왕국은 이세벨에서 비롯된 바알 숭배로 끊임없는 영적 갈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들의 동맹 제안은 단순한 평화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다의 힘을 이용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계략이었다.

여호사밧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는 유다가 여호와의 법에 따라 거룩한 나라로 남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북이스라엘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두 왕국이 함께 평화를 누리기를 원했다. 그의 눈앞에는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아달랴의 얼굴이 겹쳤다. 한쪽은 어린 왕자의 순수한 모습이었고, 다른 한쪽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야망을 담고 있는 차가운 이세벨의 얼굴이었다.

“왕이시여,” 측근 중 한 사람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이 결혼은 두 왕국 간의 화합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바알 숭배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습니다. 신중히 고려하시옵소서.”

여호사밧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신하들과 제사장들을 불러 깊은 논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밤이 깊어갈수록 그의 마음속 갈등은 더욱 커졌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벽을 응시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주님, 이 결정이 유다를 지키는 길이 되게 하소서. 그러나 만일 이 선택이 위험을 부른다면, 제게 그 지혜를 허락하소서.”

결국 여호사밧은 사신을 다시 불러 결정을 전했다.

“유다는 평화를 원한다. 이 결혼이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이를 받아들인다.”

사신은 유다왕의 승낙의 서신을 몸에 품고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로 향했다.

아달랴- 그녀는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악명 높은 이세벨 왕후의 딸이었다. 그녀는 시돈 왕실의 혈통과 북이스라엘의 권력을 동시에 품은 존재였다. 그녀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높이셨다”라는 뜻을 가졌으나, 그녀의 삶은 어머니 이세벨의 그림자와 바알의 제단 안에 있었다. 바알의 제단은 유다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다에서 왕자비로서 생활은 그녀에게 새로운 무대를 열어주는 기회처럼 보였다. 이 결혼을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그녀의 영향력을 확장할 통로였으며, 그녀의 이름을 역사의 한가운데 새길 발판이었다. 결혼이 결정된 후, 그녀는 침착한 모습으로 유다 왕국으로 가는 가마에 올랐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 내내 그녀는 단 한 번도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새로운 궁전의 벽이 그려져 있었고, 그 벽 위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유다 왕국에 끼칠 영향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하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자신감과 그 길 끝에 있을 권력만이 보였다.

결혼식은 예루살렘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아달랴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북이스라엘 사절단의 호위를 받으며 성문을 통과했다. 그녀는 어머니 이세벨의 피를 물려받아,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눈부신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길게 흘러내리는 흑단 같은 머리카락은 햇살 아래 은은히 윤이 났고, 그 결은 마치 비단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그녀의 피부는 대리석처럼 희고 고운 빛을 띠었으며, 붉고 가는 입술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상대의 마음을 혼란에 빠뜨릴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압도감은 그녀의 눈빛에서 발현되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 자리 잡은 눈동자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마치 보는 이의 영혼을 꿰뚫어 읽고도 차갑게 미소 짓는 여유를 지닌 듯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을 때면, 그것은 단순한 미소가 아니라, 상대를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매혹과 두려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덫과도 같았다. 그녀의 존재는 단지 아름다움을 넘어, 가까이 다가갈수록 벗어나기 어려운 치명적인 뇌쇄의 힘을 품고 있었다. 그녀가 가마에서 내려설 때,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한순간 숨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단순한 북이스라엘의 공주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손에 쥔 듯한 확신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야망으로 빛나는 존재였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그녀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외모에 놀랐으나, 어딘가 느껴지는 거리감에 속삭임을 나누었다. 여호사밧은 왕좌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주님, 간절히 기원하오니 부디 이 결혼이 유다를 위협하지 않게 하소서.”

그는 자신의 결정이 유다의 미래에 어떤 피바람을 가져오게 될지 알지 못한 채, 결혼식의 마지막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날의 화려한 축복 속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새로운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ul>
 	<li>계속-</li>
</ul>]]></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20 Oct 2025 13:25:3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비 효과]]></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13]]></link>
			<description><![CDATA[<b>                                                                                                                             지은이:  </b><b>주성준 </b>

<strong>나비 효과</strong>: 이 표현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가 1972년에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실시한 강연의 제목인 '예측가능성-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 (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에서 유래한다.

이 나비효과는 동명의 소설과 영화가 별로 흥행되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이 가지는 시사성 때문에 많은 곳에서 인용 되면서 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효과인데 실제로 그 내용을 정확이 아는 사람은 드믈 것 같다. 왜 브라질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서 폭풍이 되는가? 라는 물음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비효과는 하나의 비유인데 비유가 너무 유명해져서 원래 이론이 없어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 나비 효과야 말로 교만한 인간의 능력에 한계를 부여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명나무를 도는 또 하나의 불 칼임을 확신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발명한 가장 위대한 것 하나만을 꼽으라면 단연 컴퓨터이다. 1940년대에 발명된 컴퓨터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여 인류 사회의 문화 전반 뿐 아니라 우리 생활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기에는 1chip - MICOM이라 불리는 작은 반도체 속에 들어간 컴퓨터가 평균 2~3개씩 내장되어 있다. 휴대폰, TV, 냉장고, 에어콘, 선풍기.. 이런 큰 가전 제품뿐 아니라 심지어 휴대폰 충전기에 까지 빠짐없이 마이컴이 들어가 있다. 이러한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가히 광속이라 할 만큼 발전해 왔다. 거의 모든 전자 제품에 사용하는 원칩 마이콤들의 성능은 1980년대 후반에 보급된 PC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며 또한 현재 판매되고 있는 데스트 탑 PC들은 1970년대 초 나사에서 우주선을 발사할 때의 사용한 컴퓨터보다 백만 배 이상의 속도와 용량을 자랑한다. 또한 그럼 지금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빛이 0.003 밀리 미터를 전진할 때 한 번의 연산이 일어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를 가지고 있다. 10~20년 전 쯤 되었을까? 엄청난 가속도(?)를 자랑하며 빨라지는 컴퓨터의 발전으로 인간은 한 때 오만에 빠졌었다. 그것은 우주가 시작할 때 모든 초기 조건을 알 수 있다면 현재 모든 자연 현상을 컴퓨터로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간의 오만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이 바로 카오스 (Chaos) 현상의 발견이었다. 그러면 카오스란 대체 무엇인가? 이 카오스의 현상을 아주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보여주는 것이 다음 수식이다.

a(n)= 3.8*a(n-1){1-a(n-1)}

수열이라는 수학적 기호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새로 풀어보면 초기에 a(1)=0.1을 가지고 a(2)를 구해보면

a(3)= 3.8 * 0.1 *(1-0.1) =0.342

a2에 0.342를 대입하고 다시 a3를 구해 보면

a(3) =4.6 *0.342 (1-0.342) =0.8551368

이런 식으로 계속 계산을 하면 a(100)은 물론 n이 아무리 큰 숫자라 하더라도 컴퓨터를 이용하여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비로운 것은 a(100)의 값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정확한 값은 절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a(1)=0.1대신에 0.10000000000001을 대입하여보면 a(100)에서 완전히 다른 값이 된다. 필자가 가진 컴퓨터에서는 a(1)= 0.1 일때 a(100)= 0.676880336750323이었는데 0.10000000000001을 대입하면 a(100)= 0.570536371949166이 나온다. 물론 이 값은 각 자의 컴퓨터 마다, 프로그램 마다 답이 모두 다르게 나온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컴퓨터를 합하여 푼다하더라도 절대로 알 수 없는 숫자 인 것이다.

바로 이 효과를 카오스 효과 (나비 효과)라 한다. 대부분의 미분방정식이나 차분방정식에서는 초기값을 0.1이나 0.10000000000001을 대입했을 때 동일한 값을 출력하는 반면에 나비효과를 가지는 위와 같은 카오스 식에서는 완전히 다른 값을 출력한다. 또한 컴퓨터에서는 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1/3을 계산할 때 =0.333333333333....와 같이 무한히 반복되는 소수를 사용할 수가 없고 어느 자리 수 이하는 버림을 사용하여 0.333...3300000와 같은 유한 소수를 사용한다. 이처럼 컴퓨터는 무한한 소수를 다루지 못하고 어떤 자리수 이하는 버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에러를 유한 자리수 에러 (Finite word length error)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 값은 무시할 정도로 작은 값이기 때문에 아주 무시해도 상관이 없지만 카오스식에서는 매 스텝에서 발생하는 버림이 불과 몇 단계 뒤에는 완전히 다른 값으로 되기 때문에 우리가 계산한 값은 전혀 엉뚱한 값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간단한 수학 식인데 그 값은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알수 없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카오스 효과를 가지는 것이 많은 데 그 대표적인 것이 주사위다.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로보트와 전세계의 슈퍼 컴퓨터와 미래에 앞으로 개발될 슈퍼 컴퓨터 까지 합친다하더라도 내가 던지는 주사위의 값을 절대 예측할 수 없다. 주사위의 속도 지면과 닿은 각도 그리고 기압 바람 온도에 이르기까지 아주 작은 값의 변화에도 나오는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토록 믿고 신봉하는 수학 속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을 심어 놓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인 것이다. 기상예보도 마찬가지이다. 제트 기류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약 1주일이 걸린다. 1주일 뒤에 자신이 있던 위치와 다시 만날 때 역시 카오스로 빠져 버린다. 그래서 아주 작은 차이... 그것이 비록 나비가 날개 짓하는 작은 바람에도 완전히 다른 기상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1주일 안쪽의 기상 예측은 어느 정도 정확도를 가지지만 1주일 뒤의 기상을 완벽히 예측하는 일은 그 어떤 과학으로도 불가능일인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알면 알수록 또한 수학적 깊이를 파고 들수록 우리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하나님의 불 칼을 만난다. 그 세계는 인간이 창조한 과학과 수학 속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임을 표시하고 굳게 영구 봉인된 신의 영역인 것이다. 그 영역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합니까?.... 그냥 믿고 기도하며 말씀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죠.. 뭐....”]]></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01 Sep 2025 09:56:1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1 - 아합왕과 이사벨 왕비 (하)]]></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12]]></link>
			<description><![CDATA[<strong>아합과 이세벨: 검은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심판의 불꽃 (하편)</strong>

주성준 지음

아합의 신하들은 벤하닷과 전쟁의 승리로 들어온 많은 전리품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아합왕은 수행하는 신하 없이 홀로이 아름다운 날씨의 상쾌한 정원을 거닐며 좋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눈길은 자연스레 정원 너머로 향했다. 그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포도원은 풍요로웠다.나봇이란 사람의 소유의 포도원이었다. 잘 정돈된 덩굴과 비옥한 흙은 마치 왕의 정원과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아합은 자신도 모르게 나봇을 불러들였다. 그는 왕으로서의 권위를 최대한 억누르고, 유연한 태도로 말했다.

"네 포도원을 내게 팔라. 내가 그것을 채소밭으로 삼으려 하노라. 그 대신, 더 좋은 포도원을 주거나 그 가치에 상응하는 은을 주리라."

그러나 나봇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왕이시여, 이 포도원은 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땅을 왕께 팔 수는 없습니다."

그의 단호함은 아합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나봇을 떠나보낸 뒤에도 그 포도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밤이 되도록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날 밤, 정원에서 서성이던 아합을 이세벨이 발견했다. 그녀는 조용히 다가와 그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왕이시여, 무슨 일이 당신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아합은 깊은 한숨을 쉬며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실망과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이세벨의 눈빛은 점차 차가워졌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

"왕이시여,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왕의 뜻을 거스를 수 없으니, 나봇의 포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을 제게 맡기십시오. 제가 왕께 그 땅을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결단이었다. 아합은 짧은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이세벨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했다. 그녀는 나봇에게 배교와 신성모독의 죄명을 씌웠다. 거짓 증언을 조작하고, 나봇을 재판정에 세웠다. 나봇은 공개적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피는 대지에 스며들었다. 그의 포도원은 이제 아합의 것이 되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을 거닐며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졌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한순간도 가볍지 않았다. 나봇의 피맺힌 외침이 그의 귓가를 맴돌았고, 그의 양심은 거친 바람처럼 요동쳤다. 그날 밤, 그는 이세벨을 찾아갔다.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피곤했다.

"이세벨이여, 당신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하였소. 그러나 나봇의 죽음이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소. 그의 피가 우리 가문과 이 나라에 저주를 부르지는 않을까 두렵소."

그러나 이세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왕이시여, 왕의 뜻은 곧 법입니다. 사소한 일로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마십시오. 나봇의 땅은 이제 왕의 것이며, 그것은 이 나라의 번영을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말은 마치 얼음처럼 차갑고, 돌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합의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했다. 정원의 밤바람은 그의 옷자락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는 여호와의 심판 같은 차가움이 묻어 있었다. 이제 아합의 마음에는 두 가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나는 벤하닷과의 평화협정으로 시작된 여호와의 경고였고, 다른 하나는 나봇의 피가 뿌려진 포도원에서 자라나는 죄책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 두 그림자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이세벨의 패악은 단지 종교의 영역에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왕비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왕국의 실권을 틀어쥔 존재였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전통은 무너지고, 신앙은 타락하며,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이름 아래 복종을 강요받았다. 그 제단 앞에서 바쳐진 짐승의 피는 땅에 흘렀고, 마치 여호와를 향한 이스라엘의 마지막 충성마저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계획은 뱀처럼 교묘했고, 그 야망은 끝이 없었다. 아합은 어느새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고, 왕의 이름으로 집행되는 모든 것들은 사실 그녀의 뜻이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점차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세벨은 만족하지 못했다. 여호와의 이름을 드높이며 그녀의 길을 가로막는 자들, 충신들과 선지자들의 존재가 그녀에게는 가시와도 같았다. 그녀는 그들을 쓸어내려 했다. 그들의 목숨은 하나둘 사라져 갔고, 여호와를 외치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마침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목숨을 걸고 아합 앞에 섰다. 그의 모습은 삭막한 들판 위에서 바람을 견디는 나무처럼 단단했고, 그의 목소리는 번개처럼 강렬했다.

"왕이시여," 엘리야의 목소리가 왕궁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행한 죄악으로 인해 너와 네 집안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합은 순간 움찔했다. 그의 눈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스쳤다. 그는 서둘러 물었다.

"선지자여,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크게 지었단 말이오?"

그러나 엘리야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그 안에 담긴 힘은 땅을 울렸다.

"네가 나봇의 피를 흘리고, 그의 땅을 빼앗았으니, 나봇의 피를 핥은 개들이 너의 피도 핥게 될 것이다."

그 말이 아합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두려움은 그의 심장을 옥죄었고, 그 공포는 한순간 그의 눈동자에 드리웠다. 그러나 이내 이세벨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다. 그녀의 말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고, 쇠처럼 단단했다.

"왕이시여, 저 예언자의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는 우리의 길을 가로막으려는 자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아합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갈등으로 요동쳤다. 아합은 왕좌에 앉아 길르앗 라못의 이름을 되뇌었다. 한때 이스라엘의 땅이었으나, 이제 아람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그 땅.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복잡한 감정은, 단순히 영토 회복이라는 외형을 넘어 자신의 왕권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타올랐다. 그의 눈은 멀리 하늘을 향했지만, 시선 끝에 비친 것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 불안이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을 불러라." 그의 목소리는 냉정했고, 그 안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며칠 후,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사마리아를 찾아왔다. 두 왕은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전쟁 전에 여호와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아합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으나, 겉으로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좋소. 예언자들을 부르라."

사마리아 왕궁에 모인 400명의 예언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아합에게 말했다.

"길르앗 라못으로 가십시오. 왕께서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합창처럼 들렸지만, 여호사밧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여호와의 참된 예언자는 없습니까?"

그의 질문은 마치 창끝처럼 날카로웠다. 아합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미가야라 하는 자가 있소. 그러나 그는 언제나 나에게 불리한 말만 하오."

"그를 불러주시오."

여호사밧은 단호했다. 잠시후 미가야가 왕들 앞에 섰다. 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왕의 권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냉정함이 담겨 있었다. 아합은 그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말해 보라. 길르앗 라못으로 가면 내가 승리하겠는가?"

아합은 조롱 섞인 태도로 물었다. 미가야는 잠시 침묵했다가, 가볍게 대답했다.

"예, 승리하실 것입니다."

아합은 그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냉소를 놓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라! 여호와께서 너에게 무엇을 보여주셨는지 감추지 말라!"

그 순간, 미가야의 목소리는 냉엄하게 바뀌었다.

"내가 보니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졌습니다. 왕께서 길르앗 라못으로 나아가시면 죽을 것이며, 백성들은 지도자를 잃게 될 것입니다."

아합은 그의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이 자를 감옥에 가두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물과 빵만 주라!"

미가야는 고개를 들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만약 왕께서 무사히 돌아오신다면, 여호와께서 나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돌아오지 못하신다면, 그것이 곧 여호와의 뜻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아합의 마음에 섬뜩한 무게로 내려앉았다. 미가야의 예언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합이 전쟁에서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여호와의 선포였다. 마침내 전쟁의 날이 밝았다. 아합은 병사의 갑옷을 입고 변장했다. 적의 주목을 피하려는 그의 계산은 치밀했지만, 운명은 이미 그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전투는 시작되었고, 양쪽 병사들은 칼을 휘두르며 피와 혼돈 속으로 뛰어들었다.그때, 아람 군의 한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이 아합의 갑옷 틈새를 뚫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고통을 느끼며 전차 안으로 쓰러졌다. 피가 그의 옷과 갑옷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나를 전쟁터 밖으로 옮기라. 나는 부상을 입었노라."

그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고, 몸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전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합은 피 흘리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피는 멈출 줄 몰랐고, 그의 의식은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주변의 함성과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말발굽의 울림은 점차 먼 곳으로 물러갔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전쟁터의 혼돈을 담지 못했다. 대신,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운 것은 엘리야의 목소리였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그곳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

그 말은 마치 전장에서 울리는 나팔소리처럼 선명했고, 그에게 남은 마지막 기억을 집어삼켰다.

해가 저물기 전, 아합은 전차 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가 죽었을 때, 전장은 이미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의 몸은 사마리아로 옮겨졌고, 전차를 씻기 위해 흘린 물은 성문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 물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그곳에 모여든 개들이 고개를 숙여 핥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언의 성취였다. 나봇의 피가 대지에 스며들었던 그 땅에서, 이제 아합의 피도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엘리야의 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다.

아합이 죽은 뒤, 북이스라엘의 권력은 빠르게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마리아의 왕궁은 여전히 왕국의 중심으로 서 있었으나, 그것은 과거의 영광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이세벨의 궁전 이즈르엘은 그저 부속된 별궁처럼 보였으나, 아합과 이세벨의 통치 기간 동안 왕권의 또 다른 축으로 기능했다. 그곳은 단순한 별궁 이상의 의미를 가졌으니, 이세벨이 바알 숭배를 주도하며 자신의 권력을 뿌리내린 곳이 바로 이즈르엘이었다. 나봇의 포도원에서 흘러내린 피 또한 그 땅의 어두운 역사를 더욱 깊게 물들였다. 아합이 죽고 나서도 이세벨은 이즈르엘을 자신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녀는 사마리아의 왕위를 잃을 수 있다고 느낄 때조차, 이즈르엘에서 만큼은 자신이 지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즈르엘의 궁전에서 그녀는 여전히 왕비로서의 권위를 유지하려 했으며, 그곳은 그녀가 마지막 자존심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성채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에게 한 이름이 전해졌다. 그것은 바로 예후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군사적 위협으로 들렸다. 예후라는 이름은 북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알려져 있었으나, 그 순간 전해진 예후의 행보는 단순히 반란의 범주를 넘어섰다. 사자가 이세벨의 궁전으로 달려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예후가 이즈르엘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있으며, 그의 목적은 분명치 않으나 그의 행보는 빠르고 맹렬합니다."

이세벨은 처음에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반란이라면 이전에도 있었고, 그것은 왕비인 그녀가 짓밟아온 도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자의 떨리는 목소리와 그의 말 속에 담긴 불길함은 그녀를 쉽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며, 그는 아합의 집안을 멸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린 순간, 이세벨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스스로를 다잡으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아합의 집안이다. 그러나 내가 왕비임은 변하지 않는다."

예후는 단순히 군사적 반란을 일으키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여호와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심판의 도구였다. 그의 눈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고, 그의 손에는 아합의 집안을 멸하라는 여호와의 사명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단순히 반란군의 수장이 아니었다. 그는 여호와의 심판을 실행하는 칼이었다. 그가 이즈르엘로 향하는 길은 먼지구름으로 가득 찼다. 그의 말발굽은 땅을 울렸고, 그의 군대는 그 뒤를 따랐다. 그의 눈은 이즈르엘의 성벽을 향했고, 그의 발걸음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예후의 가슴속에는 여호와의 명령이 타올랐고, 그의 심장은 그것을 실행할 결의로 불타올랐다. 이즈르엘의 궁전은 여전히 찬란하게 보였으나, 그곳에 드리운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예후의 이름은 단순한 도전자가 아닌 여호와의 심판자로서 이즈르엘의 공기를 짓눌렀다. 이세벨은 그 이름이 단순히 또 다른 반란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예후의 등장은 그녀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최후의 그림자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세벨은 끝까지 자존심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단장하고, 창문 앞으로 걸어가 중얼거렸다.

"왕비는 마지막 순간까지 왕비다."

그녀는 예후의 이름이 전해진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척했으나,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 이름이 무너진 왕국의 벽처럼 울리고 있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다가오는 자가 있더라도, 내 자존심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예후의 이름이 거대한 나팔소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최후를 알리는 소리였다.이즈르엘의 궁전에서는 비보가 전해졌다.

"예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후의 이름을 들은 순간, 그녀의 손끝이 잠시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떨림을 감추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었다. 신하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지만, 이세벨은 여전히 태연했다. 그녀는 왕비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화려한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고 아름다웠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이 순간을 예고하고 준비해 온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이세벨은 창문가에 서서 예후가 다가오는 모습을 기다렸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예후가 성벽 아래에 다다르자, 그녀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을 배신한 자여, 너의 반란이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리라 믿느냐?"

그녀의 목소리는 성벽 위에서 메아리쳤지만, 그것이 예후를 흔들지는 못했다. 예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냉소와 경멸이 섞여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단호했다.

"저 여자를 창밖으로 던져라!"

그 순간, 이세벨의 곁에 서 있던 신하들이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들의 충성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몇몇 신하들이 예후의 명령에 따랐다. 그들은 그녀를 붙잡아 창문 밖으로 던졌다. 그녀의 몸은 성벽 아래로 떨어졌고, 그 추락은 짧고도 무거웠다. 이세벨의 몸이 땅에 닿자, 그녀의 피가 성벽과 대지 위로 퍼져 나갔다. 말들이 그녀의 몸을 짓밟았고, 그녀의 피는 진흙 속에 섞였다. 왕비로서의 마지막 남은 흔적마저 그 순간 지워졌다. 예후는 성 안으로 들어가 연회를 열었다. 그는 식탁에 앉아 음식을 들며 자신이 이룬 일을 돌아보았다. 식사가 끝난 후, 그는 무심하게 명령했다.

"그녀는 왕의 딸이니, 묻어 주어라."

그러나 사람들이 그녀의 시신을 찾으러 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그녀의 형체는 온전치 않았다. 개들이 그녀의 몸을 뜯어먹고 있었고, 남은 것은 손과 발, 그리고 머리의 일부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그녀의 악행이 여호와 앞에서 완전히 심판받았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엘리야가 예언한 대로, 그녀의 마지막은 가장 처참하고도 비참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아합과 이세벨의 삶은 결코 단순한 한 왕과 왕비의 몰락이 아니었다. 그들의 권력과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해 이루어진 악행은 여호와의 이름 앞에 철저히 심판받았다. 그들은 한때 이스라엘의 중심에 있었으나, 이제 그들의 이름은 역사 속의 경고로만 남게 되었다.

그들의 추락은 여호와의 심판이 얼마나 강렬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다. 그러나 심판의 불길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인간이 끝내 외면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기다림이었다. 그분은 여전히, 어쩌면 끝없이, 인간이 그분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무한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심판은 결코 멈추거나 지체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폭풍과도 같아, 아무리 더디게 느껴져도 반드시 닿아온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으나, 그 맑음은 묘한 무게를 품고 있었다.

사마리아의 대지는 침묵에 잠겨 있었고, 그 침묵 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며, 그들의 선택은 어디로 향하는가?

여호와의 손길은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그 심판의 울림으로, 역사의 끝자락에 또 하나의 경고를 새기고 있었다.

(끝)]]></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Tue, 24 Jun 2025 17:17: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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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1 - 아합왕과 이사벨 왕비 (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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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strong>아합과 이세벨: 검은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심판의 불꽃 (중편)</strong>

주성준 지음

아합왕에게 벤하닷 왕의 항복 권유를 전했던  사자는 급히 벤하닷에게 돌아와 무릅을 꿇고 업드리어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폐하, 이스라엘 아합왕의 답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사자는 벤하닷의 옥좌 앞에 잠시 왕을 바라보다 이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는 떨림 없이 차분했으나, 그 속에는 무겁고 가라앉은 기류가 서려 있었다.

“아합왕은 폐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대리석 궁정에 무겁게 드리워진 침묵은 곧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 벤하닷은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 사자의 목소리를 되씹으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피빛 살기가 번지고 있었고, 얼굴은 한순간에 울긋불긋하게 물들었다. 주먹을 움켜쥔 그의 손이 의자의 팔걸이를 세차게 내리쳤다.

"감히 나를 우롱하겠다는 것이냐!"

벤하닷의 외침은 궁정의 대리석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그의 두 눈은 이글거리며 핏발이 섰고, 목소리는 분노로 갈라졌다.

"내 림몬 신께 맹세하노니, 사마리아의 돌 하나, 기둥 하나라도 남지 않게 하리라!"

그 순간, 궁정 안은 얼음장 같은 침묵이 내리깔렸다. 신하들과 장수들은 몸을 움츠리며 그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튈까 두려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벤하닷의 성난 포효는 그들을 짓눌렀고, 그의 울림은 마치 천둥처럼 천장을 타고 퍼져 나갔다.

"들으라! 나의 군대를 일으켜 사마리아의 숨결을 지워버리리라! 그들이 감히 나를 거절했으니, 그 값을 뼈저리게 치르게 할 것이다!"

그의 명령은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피로 물든 미래가 그 자리의 모든 이들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장수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신하는 움츠린 채 명령을 받아 적었다. 벤하닷은 결연하게 왕좌를 떠나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모든 동맹국에 전하라. 즉시 군대를 일으켜 호란 평원에 집결토록 하라. 칼을 가는 데 주저하지 말고, 화살을 준비하라. 일주일 내로 출병하리라!"

명령은 번갯불처럼 사방으로 흩어졌고, 벤하닷의 분노를 싣고 사자들이 말을 달렸다. 불과 일주일 뒤, 호란 평원에는 천막들이 가득했고, 깃발은 바람에 펄럭이며 붉은 하늘 아래 도열한 군대의 결연한 숨결을 알렸다.

"전군, 출진하라!"

벤하닷의 손이 번쩍 하늘을 가리키자, 대지 위에 울림이 퍼졌다.

“와아----!”

함성은 폭풍처럼 터져 나와 하늘을 뒤흔들었다. 아람과 암몬, 모압, 하맛 등 32개 동맹국의 10만 대군은 질서 정연하게 나아갔다. 전선의 말발굽은 땅을 때리며 먼지를 일으켰고, 무거운 병거의 바퀴는 길을 눌러 구덩이를 만들었다.

다마스쿠스를 출발한 군대는 요르단 계곡을 따라 남하했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스르엘 평원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드넓은 평원을 지나는 행군은 위엄과 공포를 동시에 뿜어내며, 그들의 검은 그림자는 갈수록 길게 드리웠다.

열흘 뒤, 그들은 마침내 사마리아의 성벽 아래 도착했다. 먼지 구름 속에서 깃발이 솟구치고, 도열한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제 벤하닷의 칼끝이 사마리아를 향해 번뜩이기 시작했다.

사마리아 성 안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벤하닷의 군대가 저 멀리 지평선을 뒤덮고 다가오며, 하늘과 땅 사이에는 무겁고 검은 먼지 구름이 가득했다. 성벽 위에 선 병사들은 저 멀리 밀려오는 아람의 군세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끝없이 이어진 적들의 깃발과 창끝은 마치 파도가 되어 하늘을 뒤덮었고, 그 수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병사들의 얼굴엔 이미 핏기가 사라졌고, 손에 쥔 창끝마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고, 이 압도적인 전세 앞에 무엇으로도 맞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성 안의 왕궁은 더욱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왕좌에 앉은 아합의 얼굴은 잿빛이었고, 두 손은 떨림을 숨기려 의자 팔걸이를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눈은 멍하니 텅 빈 궁정의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의 귀에는 멀리서 울려오는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함성이 마치 종말의 전조처럼 들려왔다. 그가 입을 열었으나, 나온 것은 묵직한 한숨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왕궁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바람이 먼지와 함께 실려 들어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한 사내가 문턱에 서 있었다. 누더기 같은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렸으나, 그 초라함을 가리기라도 하듯 그의 눈빛은 마치 하늘의 번개처럼 날카롭고 깊었다. 그의 한걸음 한걸음은 묵직하면서도 거리낌이 없었고,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이끌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들어온 그의 하늘과 같은 위엄에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눈빛 하나로 왕과 궁중의 모든 신하를 꿰뚫는 듯한 그의 시선에 왕궁은 다시금 숨죽인 정적에 휩싸였다. 그 사내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의 구름을 뚫고 내려온 우레와 같았고, 그 안에는 인간의 것이 아닌 초월적 권위가 담겨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큰 무리를 오늘 네 손에 넘기리니, 이는 네가 내가 곧 여호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임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마리아의 성문을 두드리는 그 군대의 수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내 손이 그들을 무너뜨리리라. 내가 아람의 왕 벤하닷과 그 동맹국의 군대들로 너희 앞에 무릎을 꿇게 하리니, 땅에 엎드러져 죽음을 맞이하는 자들의 비명이 하늘까지 이를 것이다. 네가 이를 보게 되면, 네 입술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니라.'"

그의 음성은 사람의 음성이 아닌 듯 바람을 가르고 궁정의 천장을 뚫고 나가는 듯 울려 퍼졌다. 왕궁의 신하들은 두려움과 경외감에 몸을 움츠렸고, 심장이 얼어붙은 듯 말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 그 말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언이었고, 벤하닷의 군대가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왕좌에 앉아 있던 아합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벤하닷의 위협과 사마리아를 둘러싼 대군의 그림자가 그의 마음을 짓눌렀던 그 순간, 그 한마디의 권위 있는 선언은 그의 내면에 움츠려 있던 용기를 일깨웠다. 그의 입술은 떨렸으나, 마침내 묵직하게 터져 나왔다.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끼?"

그 질문은 자신을 향한 물음이기도 했고, 여호와의 뜻을 묻는 기도이기도 했다.

그 사내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마치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처럼 대답했다.

"왕이 시작하라. 너의 손이 칼을 들고 움직이는 순간, 여호와의 손이 그 칼과 함께 움직이리라. 그러니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라. 너희를 위해 싸우시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이시니라."

그 순간, 왕좌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합의 두 눈은 서서히 흔들림을 멈추고, 긴장과 두려움 대신 결단과 비장함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굳게 닫혔고, 천천히 왕의 권위를 되찾은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전군을 집결시켜라. 먼저 나가 싸울 것이다!"

신하들은 처음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으나, 이내 왕의 결단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벤하닷의 군대는 여전히 사마리아 성벽 저편에서 그들의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왕궁의 침묵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문가에 섰던 그 선지자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그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왕궁의 벽과 아합의 심장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것은 패배와 죽음의 공포를 잠재우고, 천사의 군대를 이끄는 하나님의 약속처럼 아득하고도 확고했다.

사마리아 성문은 무겁게 열리며 비장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너머로, 젊은 근위병 232명이 창과 검을 손에 쥐고 나아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흔들림 없었고, 눈빛은 마치 불길처럼 타올랐다. 이들은 왕궁의 근위병이자 아직 전쟁에 경험이 없는 초년병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이끄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그보다 더 큰 무언가—신의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아람의 전초 진영에서는 마치 승리의 축하 파티라도 하듯 술잔이 오가고 있었다. 벤하닷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무방비로 흩어져 있었고, 장수들은 진영 한가운데서 잔치를 벌이며 취해 있었다. 그들은 사마리아의 성문을 향해 나온 병사들을 보고도 비웃음을 터뜨렸다.

“저것 봐라. 항복 사신이라도 보냈나 보군.”

“죽을 놈들이 무슨 배짱으로 나오는가?”

그러나 그 비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첫 번째 검이 번쩍이며 아람 병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피가 흙바닥을 적셨고, 동시에 아람 진영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근위병들의 공격은 번개처럼 빠르고 거침없었다. 그들은 목숨을 건 듯 돌진했고, 아람 병사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무너져갔다.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취기에 젖은 아람의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술잔을 든 손은 떨렸고, 병사들은 칼을 잡으려 허둥대다 쓰러졌다. 한순간에 균열이 생기고 혼란이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사마리아의 성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아합의 본군이 쏟아져 나왔다. 수천의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문을 넘어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빛을 받아 번뜩이는 창끝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적진을 휘몰아쳤다.

아합은 말 위에 올라 군대의 선두에 섰다. 한 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들고 그의 얼굴은 이미 왕의 두려움 대신 전사의 비장함으로 굳어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른 병사들은 신의 명령이 그들의 어깨를 누르는 듯 사력을 다해 돌진했고, 아람의 병사들은 처음 보는 사마리아 군의 기세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람 진영의 한복판에서는 술에 취한 채 무거운 갑옷을 걸친 벤하닷이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뭐 하는 것이냐! 그들을 생포하라! 모두 생포해라!”

그러나 그의 명령은 혼란 속에서 허공으로 흩어졌고, 장수들은 서로를 부르짖으며 방향을 잃은 채 휘청거렸다. 아람의 진영은 마치 폭풍에 휩쓸린 갈대밭처럼 흔들렸다. 병거는 길을 찾지 못해 부서지고, 말들은 놀라 날뛰며 병사들을 밟고 지나갔다.

이제 전장은 혼란과 절규로 가득 찼다. 사마리아의 병사들은 하나둘씩 아람의 장수들을 베어 넘겼고, 바람을 가르는 창들이 피를 튀기며 진영을 꿰뚫었다. 적들의 붉은 깃발은 땅에 떨어지고, 승리를 확신하던 아람의 장군들은 이제 도망칠 길을 찾기 바빴다.

벤하닷은 멀리서 흙먼지 속으로 번져가는 아합의 군대를 보며 술잔을 내팽개치고 병거에 올라탔다. 그의 얼굴은 핏기가 가시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퇴각하라! 진영을 버리고 퇴각하라!”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사마리아 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추격을 시작했고, 아람 병사들은 저마다 흩어져 도망쳤다. 그날의 전장은 피와 무기, 그리고 무너진 자들의 절망만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조용히 잠들었다. 황혼이 지평선에 내려앉을 무렵, 사마리아의 성문 앞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아합은 전장을 내려다보며 승리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기쁨의 순간에도 그의 마음 한편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일렁였다.

그때, 피로 물든 전장의 바람 속에서 다시 그 선지자가 나타났다. 흙먼지와 핏내가 가득한 대지 위를 천천히 걸어와 왕 앞으로 섰다. 그의 눈빛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고, 목소리는 여전히 하늘의 권위를 품고 있었다.

“왕이여, 오늘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니라. 그러나 잊지 마시오. 벤하닷은 돌아올 것이며, 그의 군대는 더 강해질 것이오.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승리는 물거품이 되어 당신을 삼킬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성벽 아래에 어둠이 깔리며, 승리의 함성과 도망친 적들의 절규는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날 전장을 스친 바람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피, 검, 그리고 잊혀져서는 안 될 선지자의 경고를.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세벨의 유혹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여호와와 이세벨 사이에서, 그리고 왕으로서의 자신과 인간으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싸움은 마치 끝없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헛된 몸부림 같았다. 아람 군대가 산산조각 난 그날, 아합은 마침내 자신이 승리한 왕임을 느꼈다. 그러나 그 승리는 마치 바람 속에서 손으로 잡으려 했던 연기처럼 허무하게 흩어졌다. 사마리아의 높은 성벽에 올라 적의 폐허를 내려다보던 그의 마음 한구석엔, 전쟁에서 죽은 자들의 피와 함께 여호와의 선지자가 말한 예언이 섞여 있었다.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 말이 그의 가슴을 울렸으나, 그의 곁에는 이세벨이라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여호와의 이름이 왕의 마음에 새겨지기도 전에, 이세벨의 차가운 그림자가 그것을 덮고 있었다.

전쟁은 치열했다. 벤하닷은 대군을 이끌고 평야에 진을 쳤다. 그 병력은 사방을 가득 메운 바다처럼 거대했다. 그러나 아합의 군대는 여전히 작았다. 숫적으로 압도당했으나, 이번에도 여호와의 힘이 그들과 함께했다. 전투는 여호와의 약속대로 끝났다. 아람의 대군은 또다시 무너졌고, 벤하닷은 전쟁터에서 몸을 숨겨 도망쳤다. 그의 왕좌는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고, 그는 목숨을 구걸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폐허 속에서 벤하닷은 자신의 신하들을 아합에게 보냈다. 사자들은 먼 길을 달려 사마리아의 왕좌에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패배자의 비굴함이 서려 있었다.

"왕이시여, 저희 주군 벤하닷이 은혜를 구합니다. 그의 목숨을 살려 주신다면, 시돈의 성읍과 다마스쿠스의 거리를 이스라엘의 상인들에게 넘겨드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합은 잠시 침묵했다. 승리의 여운은 아직도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것임을 알기에 그의 마음은 어딘가 무거웠다. 선지자가 전해준 여호와의 말씀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네 손에 넘기리라." 그러나 그것은 적왕을 살려두라는 뜻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왕좌에서 일어나 벤하닷의 사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나의 형제다."

그 말은 왕으로서의 자비를 가장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 자비는 여호와의 뜻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합의 결정은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인간적인 계산과 욕망의 결과였다. 평화 협정을 마치고 궁전으로 돌아온 아합의 눈앞에는 오는길에 만난 한 선지자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의 말은 여전히 아합의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손에 넘긴 자를 살려두었으니, 그의 목숨 대신 네 목숨이, 그의 백성 대신 네 백성이 희생될 것이라."

그것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운 예언이었다. 선지자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그의 마음을 짓눌렀고, 그 여운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궁전으로 돌아온 아합은 이 경고를 떨쳐낼 수 없었다. 그의 발걸음은 왕좌를 벗어나 정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문했다.

"나는 여호와의 뜻을 따랐는가, 아니면 내 욕심을 따랐는가?"

밤바람은 그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그 바람은 여호와의 대답 대신 차가운 침묵만을 남겼다.]]></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Tue, 24 Jun 2025 17:14: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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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소설: 이스라엘 왕조 실록 1 - 아합왕과 이사벨 왕비 (상)]]></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10]]></link>
			<description><![CDATA[이스라엘 왕조 실록 첫 번째 이야기

지은이: 주성준

-아합과 이세벨: 검은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심판의 불꽃 (상편)

아합은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의 후계자였다. 그는 부친 오므리 왕이 쌓아 올린 영광과 권세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북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왕으로 즉위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왕궁의 두터운 성벽 안에서 자라며 정치와 군사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그 교육은 단순히 왕족의 책무를 넘어서, 지도자로서의 날카로운 감각과 전략적 사고를 그의 내면에 심어 주었다. 또한, 그의 유년 시절은 오므리가 이룩한 안정된 국가 기반과 국경 확장의 결과로 풍요와 번영 속에 젖어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아합에게 단순한 왕자가 아니라, 강력한 군사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그러나 오므리 왕이 눈을 감고, 아합이 왕좌에 올랐을 때의 상황은 평화롭고도 복잡했다.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오므리의 통일 정책 덕에 안정된 기반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왕좌의 무게는 젊은 아합에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즉위 후 자신만의 족적을 남기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왕국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선택한 것이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의 결혼이었다. 이 결혼은 단순히 두 왕국 간의 동맹을 위한 정치적 결합 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아합의 삶은 점차 어두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이세벨은 시돈에서 태어나 왕궁의 풍요 속에서 자란 공주였다. 그녀의 외모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그녀의 성격은 강렬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바알 신앙이 깊게 뿌리내려 있었으며, 이는 그녀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중심축이었다. 이세벨은 북이스라엘로 시집 온 이후,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단을 세우고 신전을 건립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 숭배를 강요했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종교적 확장이 아니라, 민족의 영혼을 장악하려는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의 영향력은 왕비의 역할을 넘어섰다. 그녀는 여호와를 섬기는 예언자들을 자신의 권력에 걸림돌로 여겼고, 그들을 대거 학살하며 바알 숭배를 강화했다. 이세벨은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400명을 적극 지원하며, 왕국의 자원을 아낌없이 그들의 사역에 투입했다.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의 땅에 뿌린 바알 숭배의 씨앗은 이미 자라나 거대한 나무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단지 왕비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길은 왕국 곳곳에 미쳤고, 그녀의 야망은 왕국의 경계를 넘어섰다.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단은 사마리아의 중심에 우뚝 섰고, 그 앞에서는 끊임없이 희생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바알 앞에 고개를 숙였고, 여호와의 이름은 점차 잊혀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려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산속과 골짜기에 숨어들어, 침묵 속에서 여호와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낸 이는 바로 엘리야였다. 그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왕국을 뒤덮은 바알의 그림자는 이스라엘의 영혼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싸워야 했다. 엘리야는 결단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메마른 땅에 떨어지는 첫 빗방울처럼 단단하고 분명했다.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이 다시 알게 하리라."

갈멜산. 엘리야는 그곳을 선택했다. 그 산은 하늘과 가까운 곳이었으며, 백성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히 장엄한 장소였다. 그는 사자를 보내 아합에게 전갈을 보냈다.

"바알의 선지자들과 함께 갈멜산으로 오라. 여호와와 바알 중 참된 신이 누구인지 이스라엘 앞에서 분명히 밝히리라."

그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비웃었다. 그녀의 입술은 미소를 그렸지만, 눈은 차갑게 빛났다.

"어리석은 자여, 그의 외침이 무엇을 바꿀 수 있으리오."

그녀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갈멜산으로 가라. 우리의 신이 그와 그의 신이 무능함을 증명하리라."

그날, 갈멜산에는 이스라엘의 온 백성이 모여들었다. 산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바람은 무겁게 산을 휘감았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은 제단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의상은 화려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높았으며, 그들의 자신감은 넘쳐났다. 그들 뒤로는 무소불위의 이세벨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 맞은편, 엘리야는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왜소해 보였으나, 그 눈에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다. 백성들의 시선은 그에게로 모였다. 엘리야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을 가르고, 백성들의 마음을 찔렀다.

"너희는 언제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겠느냐?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

백성들은 숨을 죽였다. 그들은 그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엘리야는 손을 들어 제안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제단을 쌓고, 나 또한 제단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신에게 기도하라.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된 하나님임을 알게 하리라."

바알의 선지자들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기세는 넘쳤고, 백성들 또한 바알이 응답할 것이라고 믿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엘리야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단호했고, 그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갈멜산의 무거운 공기는, 이제 폭풍의 전조처럼 팽팽히 긴장감에 휩싸였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 주위를 맴돌았다. 그들의 외침은 산을 뒤흔들었으나, 하늘에서는 어떤 대답도 없었다. 그들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엘리야는 그들을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

"더 큰 소리로 부르라! 바알이 신이라면, 어쩌면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겼거나, 길을 떠난 것이 아니냐?“

해가 서쪽 하늘에 붉은 빛을 남기며 기울고, 갈멜산은 어둠의 그림자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엘리야는 단단히 서 있었다. 그의 손은 제단을 쌓았다. 돌과 나무를 겹겹이 올리고, 그 위에 제물을 정성스럽게 올려놓았다. 그의 움직임은 묵직했으나,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산 아래로 모인 백성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제단의 돌 하나하나가 쌓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점차 그의 움직임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야는 제단 앞에 섰다. 산 정상에 울려 퍼지는 그의 기도는 놀랍도록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마치 폭풍이 시작되기 전의 침묵처럼 강렬했다.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하나님이심과 내가 주의 종임을 이 백성이 알게 하소서."

엘리야의 목소리는 갈멜산의 정적 속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은 조용히 열렸다. 어둠 속에서 불길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더디게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하늘의 숨결이 땅을 휘감듯, 불길은 단번에 제단을 덮쳤다. 제단 위의 제물은 물론이고, 돌과 물조차 흔적도 없이 타올랐다. 산 아래의 백성들은 숨을 죽였다. 그들은 불길의 위용에 압도되었고, 그 눈빛에는 공포와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찰나의 침묵이 흐른 뒤, 한 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어 산 아래의 모든 백성이 무릎을 꿇었다. 마침내,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하나로 모였다.

"여호와, 그는 참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 외침은 산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쳤고, 사마리아의 밤하늘로 퍼져나갔다. 불길이 삼킨 제단의 흔적은 이미 사라졌으나, 그 광경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불멸의 자국으로 새겨졌다. 갈멜산의 여호와의 불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성들의 무너진 신앙을 일깨우는 마지막 울림이었다. 엘리야는 백성들의 외침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불길이 남긴 검게 그을린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백성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바알의 선지자들을 붙잡아라. 그들 중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성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산 아래로 끌려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그들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방금 자신들이 섬겼던 신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목숨이 여호와의 이름 아래 끝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기손 시내로 끌려간 바알의 선지자들은 하나씩 처형되었다. 엘리야는 칼을 든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비명과 피는 시냇물을 붉게 물들였다. 그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고, 이스라엘을 타락시킨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백성들은 그 장면을 침묵 속에서 지켜보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경외가 뒤섞였다. 여호와의 이름이 다시 그들의 영혼에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날 갈멜산에서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다!"라는 외침은 사마리아 궁전의 문턱까지 닿지 못했다. 산 아래에서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신을 찬양하는 동안, 아합의 마음은 묘한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장면을 목격했으나, 그 불길은 그의 마음을 태우지 못했다. 아합은 마치 자신이 그 모든 광경에서 분리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의 귀에는 이미 사마리아 궁전의 이세벨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아합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당신은 정말 왕은 맞는 건가요?“

그날 갈멜산에서 불길이 태운 것은 제단과 물,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들뿐이었다. 아합의 마음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의문에 갇혀 있었다. 그의 왕권은 무너질 듯 위태로웠고, 그의 내면은 이세벨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었다.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이세벨과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이세벨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차갑고, 그 차가움 속에는 묵직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합이 왕좌에 앉자마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칼날처첨 날카로웠고, 쇠처럼 단단했다.

"왕이시여,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갈멜산에서 당신은 나를, 그리고 이 나라의 신을 배신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처형당하고, 백성들은 여호와를 섬긴다 외쳤다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왕좌를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 아십니까?"

아합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녀의 비난 앞에서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엘리야의 외침이 그의 귀에 남아 있었으나, 이세벨의 냉혹한 목소리가 그것을 짓눌렀다. 그는 마침내 고개를 떨어뜨리며 조용히 말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소. 갈멜산에서 여호와의 불길이 내려오는 것을 본 이상, 나는 무력했소."

그러나 이세벨은 그의 말을 듣고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여호와라니요? 왕이시여, 그 예언자의 궤변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이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당신이며,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은 나입니다."

아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세벨의 존재는 그에게 여전히 거대한 산과 같았고, 그는 그 산을 넘어설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엘리야에게 전하라. 내일 이 시간에 내가 그의 목숨을 그 처형된 바알의 선지자들과 같이 만들지 않는다면, 신들이 내게 벌을 내릴 것이다!"

이세벨은 아랑곳 없이 아합왕의 왕좌에 앉아서 단호한 목소리로 마치 왕이라도 된 듯 사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녀의 시선은 사마리아의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그 눈빛은 이미 갈멜산에 머물러 있었다. 불길이 삼킨 제단과 처형된 바알의 선지자들, 그리고 그 모든 광경 위에 서 있던 엘리야—그것은 그녀의 분노를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상징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목적만이 남아 있었다. 엘리야의 죽음, 그것만이 그녀의 치욕을 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갈멜산에서 불을 내렸던 엘리야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이세벨의 협박 소식을 듣자마자 광야로 떠났다. 바알과 그의 선지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가, 이세벨의 차가운 분노 앞에서는 발길을 돌렸다. 산 위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외쳤던 그 목소리는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의 강인한 모습은 광야의 모래바람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백성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이 갈멜산에서 본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과 바알 선지자들의 몰락은 그들로 하여금 잠시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선지자는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 사라졌다. 그의 외침도, 그의 존재도 이스라엘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성들 사이에서 속삭임이 번졌다. 그들은 혼란스러웠다. 여호와가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믿고 싶었으나, 이세벨과 바알 숭배의 잔재는 여전히 그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갈멜산에서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졌고, 바알의 제단은 여전히 마을 곳곳에 서 있었다. 사마리아와 이스라엘 전역은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선지자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불확실함과 불안감뿐이었다. 여호와를 향한 열망은 갈멜산의 불꽃처럼 잠시 타올랐다가 점차 꺼져갔다. 이세벨의 그림자는 여전히 깊었고, 바알 숭배의 잔재는 도처에 남아 있었다. 이세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바알 숭배를 조장하기 시작했고, 왕국은 갈림길에 섰다.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거짓 신 사이에서 흔들렸다. 아합은 이 모든 혼란을 보며 무력하게 침묵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아무런 방향도 제시하지 못했고, 그의 무력함은 이스라엘을 더욱 어두운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때, 북쪽에서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아람 왕 벤하닷이 32명의 왕들과 연합하여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공한다는 소식이었다. 사마리아 성벽 위에 선 아합의 눈에는 저 멀리 지평선을 뒤덮으며 다가오는 먼지 구름이 보였다. 말발굽의 굉음과 전진하는 병사들의 함성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그 광경은 단순한 군대가 아닌, 하늘과 땅을 집어삼킬 듯한 재앙과도 같았다. 아합의 얼굴은 그 순간 긴장으로 굳어졌고, 그의 손은 성벽 난간을 단단히 붙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혼란이 번갈아 섞였다.

벤하닷은 사자를 보내어 사마리아 궁전에 협박의 메시지를 전했다.

"너의 은과 금은 나의 것이며, 너의 아내들과 자녀들 또한 내 것이다."

그 말은 마치 차가운 비수가 아합의 가슴에 꽂히는 듯한 충격을 안겼다. 궁정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정적에 휩싸였다. 아합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무겁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의 신하들은 그의 결정을 기다렸으나, 그의 눈은 먼 곳을 응시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겠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존엄마저 짓밟는 듯 낮고 기운이 없었다. 신하들 사이에서는 억눌린 한숨과 불만의 기류가 느껴졌지만, 그 누구도 감히 대놓고 반박하지 못했다. 왕의 결정은 이미 패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벤하닷의 사자들이 다시 나타났을 때,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두 번째 전언은 처음보다 더욱 모욕적이고 탐욕스러웠다.

"너의 모든 것—은, 금, 아내, 자녀는 물론, 사마리아의 전부를 넘겨라. 우리의 병사들이 너의 궁전과 가옥을 샅샅이 뒤져, 그들의 눈에 드는 모든 것을 가져가겠다."

그 말을 들은 아합의 얼굴은 순간 창백해졌다. 그의 입술은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그의 손은 의자 팔걸이를 꽉 붙잡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교차했다. 궁중의 신하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충격으로 굳어버렸으나, 곧 분노로 눈을 번뜩이며 왕에게 호소했다.

"왕이시여, 이 요구는 단순한 항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이스라엘의 정체성 그 자체를 빼앗으려는 모욕입니다.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 말에 아합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그의 심장은 뭔가가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싸움, 두려움과 왕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의 눈은 흔들렸고, 그의 숨은 가빠졌다.

마침내,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게까지 한다면...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잃겠소?"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결단이 부족했고, 방 안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못한 신하들의 시선으로 가득 찼다. 이윽고 한 신하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왕이시여, 우리가 여호와를 믿고 그분의 도움을 구한다면, 결코 저들에게 무릎 꿇을 이유가 없습니다. 왕이여,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싸우겠습니다!"

그제야 아합은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용기를 끌어내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과 두려움으로 얼룩져 있었으나, 이윽고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열었다.

"그리하라. 벤하닷에게, 우리의 답은 거절이라고 전하라."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왕의 결단 뒤에는 아직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두려움은 사마리아 성벽 아래로 몰려드는 적군의 그림자처럼 거대한 존재로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 계속 -]]></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Tue, 24 Jun 2025 16:58: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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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수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09]]></link>
			<description><![CDATA[《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1885년에 톨스토이에 의해 씌여진 단편소설로 그의 기독교 신앙이 담겨 있는 종교문학이다.

하나님에게 벌을 받아서 인간의 몸으로 알몸으로 세상에 떨어진 천사 미하엘 (미카엘 천사의 러시아식 발음)을 구두 장인인 시몬이 발견하여 돌보는 사건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나중에 미하엘이 하늘로 올라가기 직전에 자신이 세상에 내려오게 된 이유와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고 하늘로 떠나면서 마무리 되는 단편소설이다.

미하일 천사는 하나님께 한 영혼을 데려 오라는 명령을 받고 아이들 엄마의 영혼을 거두려 세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아이들도 같이 죽게 될 거라며 엄마가 울며 슬피 애원하자 마음이 약해져 하나님 명령을 지킬 수 없게 되고 만다. 빈손으로 돌아온 그에게 하나님은 다시 돌아가서 그 엄마의 영혼을 거두라는 것과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ul>
 	<li>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li>
 	<li>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li>
 	<li>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li>
</ul>
이 세 가지의 질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며 답을 찾을 때 까지 사람들에게 가 있으라 명령하였다. 그래서 세상으로 내려온 미하일은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깨달았고 또한 곧 죽을 것을 알지 못하는 귀족 신사로부터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과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부인을 보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세가지 사실을 모두 깨닫고 하늘로 돌아간다.

고전 명작이 다 그렇듯 지극히 교훈적이고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세삼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이 소설과 얼마 전 종편 방송에서 회자되었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ul>
 	<li>이 글을 읽으신는 독자들은 볼펜을 준비하시고 다음 질문에 칸을 채우고 계속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꼭 한번 적어보세요!!!)</li>
</ul>
<ul>
 	<li>본인의 몸에서 다치면 안되는 본인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본인의 신체를 5개 만 적으세요. (중요한 순서대로 적지 않으셔도 됩니다.(예 손, 허리, 무릅, 종아리, 눈, 코 ....)</li>
 	<li>1.                           2.                                3.                                      4.                                  5.</li>
</ul>
<ul>
 	<li>본인 소유의 가장 중요한 재산을 다섯 개만 적어 보세요. (예: 집, 자동차, 결혼 반지, ...)</li>
 	<li>1.                           2.                                3.                                      4.                                  5.</li>
</ul>
<ul>
 	<li>본인의 생활 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섯 개만 적어 보세요. (예: 직장, 등산, ...)</li>
 	<li>1.                           2.                                3.                                      4.                                  5.</li>
</ul>
<ul>
 	<li>본인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반려견 포함)을 다섯 명만 적어 보세요</li>
 	<li>1.                           2.                                3.                                      4.                                  5.</li>
</ul>

<hr />

아래 내용을 보지 말고 적으셔야 해요~~~!

더 아래로 내리세요.

더 내려 주세요

<hr />

다 적으셨나요? 이제 저의 질문에 따라 X표를 쳐 보시기 바랍니다.
<ul>
 	<li>당신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이제 위에 적은 20가지중 5개를 포기해야 합니다. 지워 주세요.</li>
 	<li>당신의 생명이 몇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머지 15개중 5개를 포기해야 합니다. 지워 주세요.</li>
 	<li>이제 당신에게 주어진 삶이 생명이 한 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5개만 남기고 다 지워 주세요.</li>
 	<li>이제 오늘 하루가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지막 날 함께 할 하나를 고르고 지워 주세요.</li>
</ul>
당신이 이 세상에 와서 이룬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이 최후의 날에 함께 할 그 하나는 무엇인가요? 그것을 위해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세상을 산다고 톨스토이는 결론을 내렸지만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못 내렸던 것 같습니다. 개인별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지금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예수님이나 신앙 생활이 당신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소중한 것에 들어가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02 Jun 2025 17:54: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조과학을 바라보는 한 기독교 공학자의 소고]]></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08]]></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right;">저자 : 주성준 안수집사</p>
1927년 브뤼셀에서 열렸던 제 5차 솔베이 컨퍼런스는 참석자 29명중 17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거나 그 후에 받았을 정도로 역사상 매우 권위 있었던 학술대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여기서 상대성 원리의 창시자인 알베르토 아인슈타인(1879~1955)과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1885~ 1962)의 5일에 걸친 격렬하고도 유명한 논쟁이 있었는데, 당시 거시 물리의 대가로 완벽한 수식을 추구했던 아인슈타인에게는 확률 이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양자 역학은 학문 같지도 않은 이론으로 보였던 같다. 마지막 날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 핵심이론인 확률과 예측 불가능성을 설명하는 보어를 조롱하며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라고 직격탄을 날리자 보어는 이렇게 되받았다고 한다.

"아인슈타인! 하느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쇼.(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

우리의 하찮고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과 그의 하신 일을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어쨌거나 참석한 과학자들은 이 학회의 진정한 승리자를 양자역학과 보어로 인정했다고 한다.

<img class="aligncenter" src="/wordpress/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8/202506/683d481f47b496165237.jpg" alt="" width="625" height="503" />

모 장관의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장관 후보자에게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이냐?고 한 질문이 세상에 회자 된 적이 있다. 질문의 의도를 보면 분명 창조과학에 대한 조롱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창조 과학이 추구하는 바는 우주와 지구는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지구와 생물은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출발한 학문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우리 교회에서 열렸던 창조 과학 세미나를 보면서 느꼈던 개인적 생각과 최근 청문회의 일련의 사실들을 보면서 분명 <u>창조 과학의 이론들은 생명의 창조와 분화와 같은 여러 분야에서 과학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훌륭한 학문으로 발달할 수 있음이 틀림없지만 일부 가설과 그 가설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미숙함 그리고 어이없는 실수와 거의 억지에 가까운 주장으로 전체 창조과학이 마치 사이비 과학인 양 치부되는 것이 정말 아쉬워서 이글을 쓰게 되었다</u><u>.</u>

<img class="aligncenter" src="/wordpress/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8/202506/683d4885278555068710.jpg" alt="" width="531" height="294" />

현재 창조과학계에서 가장 문제시 주장은 바로 지구와 우주의 나이 6,000년 설이다. 이 이론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이론은 주장의 근거도 전개도 증명도 엉터리인 사이비 이론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좀 더 과격한 주장을 하자면 <u>이런 주장을 하는 엉터리 창조과학자들 때문에 올바른 학문적 접근을 하려고 하는 창조과학자들 조차 사이비 과학자로 매도당하고 있다고</u> 생각한다. 더욱이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이 이론이 마치 성경에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인 것처럼 성스럽게 여기며 어떤 비난도 이견도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문제는 더욱 커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중세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이견을 제시하면 이단 불신자로 화형이라는 사형으로 다스렸고 연주시차에 의한 화성이나 목성 등의 역전이동 현상과 같은 과학적 근거에 대해 내행성 자체 공전설 등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이론을 들이대며 지동설은 불신자들의 이론인양 취급했었다. 천동설의 시작과 그 이론 전개 과정은 창세기에 지구가 태양이나 달보다 먼저 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지구의 주위를 태양이 돈다고 주장했다고 하며 지구의 공전은 물론 자전까지 부정하며 여러 가지 사이비 이론들을 이것에 꿰맞춘 것인데 그것은 지금의 지구 6,000년 설의 시작과 전개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천동설이 그렇듯 지구 6,000년 설의 주장의 근거는 성경의 일점일획도 쓰여진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문자주의”로부터 시작한다. 성경을 써진 문맥이나 문장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를 해석하는 문자주의는 지금의 많은 이단 사이비의 엉터리 성경 해석을 양산하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몇몇 기독교 이단들은 요한 계시록의 십사만 사천 명이 될 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하며 신도 십사만 사천 명을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미혹 전도하게 하고 시한부나 조건부 종말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혹세무민하고 있다. 정통교단에서는 십사만 사천은 상징적 수이지 그것이 정확한 수는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문자 있는 그대로 적용하여 종말론을 주장하면 이단 사이비인데 창세기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자가 써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오만은 어디로부터 온 것 인지 모르겠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주장을 비판하는 필자와 같은 기독교 신자들을 마치 믿음이 없는 탕자인양 취급한다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증명 없이 이단들의 해석인 ‘십사만 사천’을 믿듯 그들의 추측에 불과한 “144시간”(이하 6일 x 24시간 = 144시간 창조론이라 칭한다. 공교롭게도 144와 144,000은 묘하게 닮아있다)을 믿으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근본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하셨다고 하는 절대 진리를 믿는 것과 성경에 써진 한 단어 단어에 대한 자의적인 “사이비 과학 해석”을 비판 없이 믿으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성경은 인간이 함부로 해석할 수 없는 함축적 언어와 문맥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문학이다. 특히 창세기에는 그러한 상징적 표현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하와를 유혹했던 뱀이 인간의 성대가 없었음에도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한 사실과 카인이 추방될 때 인류는 단 세 명 밖에 없음에도 자신을 만나는 자마다 자신을 죽일 것이라 걱정하는 장면이나 카인과 셋, 에노스 등등의 아내들에 대한 창조의 기록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자손을 이은 것 등이다. 만일 이것을 문자 그대로 믿고 과학적 근거를 만들려고 모든 동물은 인간의 말을 했었는데 노아 이전에 존재했다가 멸종했다는 가설을 세우거나 창조 초기에 인간들은 아메바처럼 둘로 쪼개지는 무성 생식을 했고 그 이후부터 유성생식을 했다는 가설을 세웠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러한 가설들의 이론적 근거를 성경에 이렇게 적혀있다고 이를 믿으라고 강요하고 이를 믿지 않으면 불신자나 이단시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우스운 이론인가?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생명나무를 인간에게 감추셨듯이 거시 물리, 양자 물리, 전기, 화학 그리고 수학적 법칙과 스트링, 쿼크 반쿼크, 소립자, 원자와 분자 그로 이루어진 물질과 에너지와 암흑에너지 암흑 물질에 따른 우주의 어마어마한 세부 설계 과정을 인간에게 그것도 하찮은 인간의 언어로 몇 장의 양피지에 적어서 알려 주시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글에서 우주 6,000년 설의 중요 주장인 144시간 창조론의 주장 근거를 살펴보고 그 주장을 작심하여 반박하고자 한다. 먼저 주장의 근거가 되는 성경의 구절을 살펴보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44시간 창조설의 핵심 주장은 성경에서 창세기에서의 하루의 시간은 24시간으로 “저녁 – 에레브(ערב)”이 되고 “아침 – 보케르(בּקר)”이 되니 라는 표현으로 아침과 저녁이 되니 첫째 “낮 또는 날을 뜻하는”-욤(יוֹם)이라는 표현을 둘째 날 셋째 날 등등에 반복적으로 썼으므로 창조의 하루는 지금의 24시간에 해당하고 따라서 우주는 6일 *24시간= 144시간 만에 창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창세기 5장에 아담의 계보와 노아의 계보를 따라 계산한 것이 대략 6,000년이므로 지구 및 우주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주장이다. 구약에서는 “저녁 –에레브(ערב)”로부터 저녁까지를 하루로 여기는 구절이 여러 군데 나온다. ‘출12:18- 정월에 그 달 십사 일 저녁–에레브(ערב)-부터 이십일 일 저녁–에레브(ערב)-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레23:32-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중략) 곧 그 저녁–에레브(ערב)부터 이튿날 저녁–에레브(ערב)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고 해도 하루의 근거인 ‘저녁에서 저녁까지’가 아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에서 첫째 날이 24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근거를 찾을 길은 없다. 또한 저녁-에레브는 ‘캄캄한 밤을 뜻하는 라일(ליל)과는 달리 조그만 빛이 남아 있는 여명상태를 의미한다. 창세기 구절들에는 저녁과 아침 사이의 밤-라일에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를 지구의 저녁과 아침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께서 밤-라일에 마치 인간처럼 잠을 주무시기라도 하셨다는 것인가? 또한 창세기 첫째 날에서 셋째 날에 이르는 저녁-에레브에서 여명의 빛은 분명 태양에 의한 빛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의 태양은 넷째 날에 겨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저녁-에레브는 구약 성경에서 131회 사용 되었는데 특히 주로 안식일을 언급할 때 성경에서는 하루의 시작을 "저녁부터"(에레브)로 표현하고 있다. 안식일 전날을 "예비일"이라고 하였고 "에레브"는 하루의 마지막 시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날을 예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u>따라서 창세기의 에레브와 보케르와 욤에 대한 </u><u>타당한 해석은 인간의 관점에서의 </u><u>아침</u><u>, </u><u>저녁과 낮</u><u>(</u><u>날</u><u>)</u><u>이 아닌 하나님 관점에서 창조의 한 스텝</u><u>(</u><u>날</u><u>)</u><u>의 시작</u><u>(</u><u>아침</u><u>)</u><u>과 끝</u><u>(</u><u>저녁</u><u>)</u><u>을 나타낸 것으로 그 소요되는 시간이 현재 지구 개념에서의 몇 시간인지는 알 수 없다가 정답일 것이다</u><u>. </u>

만일 그래도 24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다. 현대 시간의 정의부터 살펴보면 예전 정의는 1초란 평균 1 태양일의 1/86,400으로 정의 되었었는데 이는 지구와 자전과 공전에 의한 값이다. 현대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자전 속도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지금은 세슘원자의 진동수로 바뀌었다. 어쨌거나 1시간이 정의가 되려면 먼저 지구와 태양과 자전과 공전 속도가 정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고 하여도 첫날에는 빛과 어둠 만을 창조하신 상태에서 지구가 아직 창조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24시간이 정의 된다는 말인가? 더욱이 아인슈타인은 그의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고 절대적인 것은 빛의 속도이며 이에 따른 우주의 모든 곳에서 시간은 공간에 따라 정의가 된다는 것이 가설을 세웠고 그 가설은 현대에 뮤온입자 실험과 같은 실제 실험으로 증명이 되었다. 이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 빛의 속도는 절대적으로 일정해야 하는데 만일 공간이 중력이나 속도에 의해 압축이 된다면 빛의 일정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압축된 공간 내에서 시간은 천천히 간다는 것이다. 이는 관찰자 시점에서 본 것이고 우리가 실제 그 공간 안에 있다면 우리의 세포분화와 같은 생체 시계나 동위원소 반감기와 같은 시간은 동일하게 간다. 만일 우리가 블랙 홀 근처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동일하게 하루라 느낄지라도 그 공간을 지구와 같은 외부에서 바라보면 그곳은 모든 것이 마치 멈춰있는 것 같이 보이고 그곳의 하루는 밖에서 보기에는 수십 수백 억년이 된다. 만일 하나님이 태초에 빛을 창조하신 공간이 빅뱅 직후 에너지와 질량이 무한대에 가까운 블랙홀과 같은 공간이라면 그곳의 생체 시계 24시간은 지구 시간으로 환산하면 100억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일 것이다. 더욱이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공간이 창조되기 전에는 시간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의 시간은 우주 공간이 창조됨과 동시에 시작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란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전’이란 개념은 아직 창조되지 않은 시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144시간 창조설이 맞는다면 지금 우주에서 하나님의 나이는 어쩔 수 없이 지구나이로 6,000살이 되신다. 어찌 감히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불위하신 크신 하나님을 얄팍하고 하찮은 인간의 지식으로 지금 3차원 지구 공간에 가두고 그분의 나이를 6,000살로 제한하려 하는가?

백번을 양보해서 144시간 창조가 사실이라 가정하자. 기본적인 학문에서는 가설을 증명할 때는 실험적 증거가 있던지 수학적 계산을 하던지 사고 실험적 고찰이 있어야 한다. 144시간 창조설을 주장하는 무리들이 제시하는 단편적인 증거를 본다면 하나 같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귀걸이들이다. 양자 물리의 많은 학자들은 깊은 수학적 이론을 전개하고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같은 지구의 극점이나 깊은 땅속에서 실험을 한다. 그러한 이론 전개나 실험에 어마어마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144시간 창조론자들은 오로지 세치 혀만 가지고 떠들 뿐 그러한 물리적 수학적 깊은 사고나 노력이나 실험이 거의 전무하다.

대표적인 예가 탄소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법의 오류 주장이다. 탄소동위원소법은 대 전재는 태양풍의 영향으로 탄소12와 탄소 14가 지구상에서 연대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탄소14는 방사성 붕괴에 의해 반감기 5,730년이 지나면 그 양이 1/2로 감소하게 되어 탄소 12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어떤 생명체가 숨을 쉬면서 살아갈 때는 지구 환경과 동일한 비율 유지하다 죽게 되면 더 이상 대기로부터 탄소 14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탄소 14는 탄소 12로 바뀌어 감소하게 되어 그 생물체 내의 탄소 12와 14의 비율을 측정하면 그 생물체가 죽은 연대를 알 수 있게 되는데 여기에서 만일 탄소 12와 14의 비율이 지금의 조성과 과거의 조성이 달랐다면 연대에 있어서 큰 오차를 가지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44시간 창조론자들은 이 점에서 이렇게 큰 오차의 ‘가능성’을 지닌 탄소동위원소법에 의한 연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한 값은 지구 6,000년 설을 반박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탄소동위법의 오류의 가능성뿐 아니라 실체적 사실이나 이론으로부터 과거의 C14와 C12의 비율이 지금과 왜? 어떻게? 얼마나? 달랐고 나아가서 6천년이 45억년으로 잘못 측정되어지게 되는 과학적 논리가 뒷받침되는 증명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144시간 창조론자는 누구도 오류의 가능성만 주장할 뿐 오류라는 증명과 나아가 그 오류에 따른 지구 6,000년 설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더욱이 방사성 동위 원소법은 이러한 탄소동위원소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라늄-납 동위 원소법, 포타슘-아르곤 연대 측정법, 아르곤-아르곤연대 측정법 등등 수많은 측정법이 있고 특히 포타슘-아르곤 법과 같은 방법은 광물 생성 초기 조건에 불활성 기체인 아르곤은 광물과 반응을 할 수 없어 암석 안에 초기 값은 0일 수밖에 없고 그 이후 방사성 분열에 의해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광물 내 아르곤의 양과 포타슘의 양을 측정하면 상당히 정확하게 그 광물의 생성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측정법으로 지구 나이 최소 45억년설이 제시되고 이에 대한 증거가 차고 넘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증거자료를 제시하면 그때 144시간 창조론자들은 증거에 대한 검증 대신 ‘그 상태 그대로 6,000년 전에 창조 되었다’라는 참으로 더 이상의 과학적 논쟁이 힘든 주장을 한다. 그냥 믿으란다. <u>사실 과거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기억에만 의존한다</u><u>.</u> <u>지금의 우주 상태와 현재의 문명과 우리가 평생의 기억을 가진 상태로 </u><u>5</u><u>분 전에 이 세상이 창조되었더라도 현재의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u><u>.</u> 그런 논리라면 6000년이 아니라 60초전에 세상이 지금 이대로 창조되었다고 주장 하더라도 논리적인 모순은 없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접근 방식으로 과학인척 하는 것을 사이비 과학이라 한다. <strong>이런 분들은 절대로 ‘과학자’라는 명함을 내밀어서는 안 되는 분들인 것 같다</strong>. 이런 식의 논리는 지구 자전에 대하여 다양한 실증적 증거에 의해 주장한 갈릴레오를 이단자 취급하며 다시는 그런 주장을 못하게 했던 ‘중세 성직자’나 십사만 사천을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주장하는 ‘사이비종교 교주’와 뭐가 다를까?

영어에 “Turn a deaf ear”라는 숙어가 있다. ‘귀먹은 귀를 들이 댄다‘라는 뜻인데 “우이독경’ 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144시간 창조를 증명하는 귀걸이가 된 코걸이 증거들은 단편적인데 반해 그를 깨뜨릴 수 있는 증거들은 쌓여만 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Turn a deaf ear”하는 형상이다. 귀머거리 귀를 돌려대는 그들에게 보어가 아인슈타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여보세요 위대하신 주님께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Hay!, Stop telling The Great LORD what to do.”]]></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02 Jun 2025 15:46: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학 박사가 다시 쓰는 건강 보조 식품 이야기 최종회- 미네랄 섭취법 (하)]]></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07]]></link>
			<description><![CDATA[이 글은 건강 기능 식품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 견해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을 오해하여 전문가와 상의 없이 현재 투약중인 약에 함부로 변화를 주시면 <b>절대</b> 안됩니다.

저자: 주성준

현대에 들어서 급격한 의학 및 과학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2022년 태어난 아이들의 기대수명은 남아는 81세, 여아는 86세에 달하고 있다. 60세 환갑잔치를 하며 축복을 받던 옛날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명이다. 최근 여러 학술 문헌에 근거하여, 1940년대의 인간 신체 나이와 현재의 신체 나이를 비교하면 지금 자신의 나이에 0.8을 곱하면 1950년대의 신체 나이에 해당한다는 보고가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 75세이신 분들의 신체 나이는 1950년대의 60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여러 여건을 고려해보면 나름 타당한 분석이지만, 꾸준히 자신의 건강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은 그 수치가 0.7~0.75쯤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호는 그동안 연재해 왔던 건강 보조 식품의 마지막 호로, 지난 9호에서 다룬 철분, 칼슘, 칼륨, 마그네슘에 이어 아연, 요오드, 셀레늄, 구리, 망간 등에 대해 알아보고, 최종적으로 영양제 전반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건강 보조 식품에 대한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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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b><b>중요도는 떨어지지만 없으면 안되는 미네랄 </b><b>: </b><b>아연</b><b>, </b><b>구리</b><b>, </b><b>요오드</b><b>, </b><b>셀레늄</b><b>, </b><b>망간 </b></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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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b><b>아연</b><b>(Zn) </b><b>과 구리</b><b>(Cu) </b>

아연과 구리는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은 미네랄이다. 하지만 둘 중 한 가지만 과다하게 섭취하면 다른 쪽의 결핍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두 미네랄이 장에서 흡수되는 체널이 서로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간에 고용량을 섭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한 미네랄만 섭취하는 것은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먼저 <b>아연의 역할</b>을 살펴보면, 아연은 세포의 활동을 도와주는 조효소로서 단백질과 DNA 생성에 관여하며, 상처 회복과 면역 유지 등 신체의 여러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면역 기능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코로나19 이후 아연 복용자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연 섭취량이 많을수록 면역 기능이 개선된다는 것 보다는 결핍될 때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아연의 일일 권장 섭취량(RDA)은 남성 기준 10mg, 임신하지 않은 여성은 8mg, 임산부는 10~13mg이다. 남성의 경우 남성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고 전립선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어 엉뚱하게 정력제로 오해(?)를 받는 미네랄이기도 하다. 또한 면역 증진과 관련하여 독감 등에 걸렸을 때는 몸에 아연의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에 수백% 용량을 올려서 섭취해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너무 오래동안 고용량를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연은 과다 복용 시 부작용이 있는 미네랄 중 하나이다. 과다 복용 시 메스꺼움, 구토, 위장 장애, 드물게는 저혈당 쇼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용량은 개인별로 매우 차이가 있으므로, 본인의 체질에 맞는 용량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아연은 구리의 흡수를 저해할 뿐 아니라 배출을 촉진하기도 하는데 이는 세포 내에 다른 미네랄을 밀어내는 역할도 한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서 카드뮴, 납중독과 같은 중금속 중독에 보조 요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연의 몸에서의 조효소로서의 너무 많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일 권장량 정도는 구리와 함께 꾸준히 경구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한 아연은 식물에는 거의 분포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채식을 위주로 식사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아연-구리를 별도로 복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b>구리</b><b>(Cu)</b><b>의 역할</b>을 살펴보면 구리 역시 모든 체세포내에 존재하는 미량원소로서 적혈구의 생성과 콜라겐의 합성 철분의 흡수를 돕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구리는 주로 뼈와 근육을 생성하는 보조 역할을 한다. 또한 건강한 백혈구의 공급에도 관여되어 역시 면역증진에 좋은 미네랄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구리는 식물과 동물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균형잡힌 식사를 한다면 별도로 섭취할 필요는 없다. 특히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나 굴과 갑각류와 같은 해산물에 매우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타민 C를 메가도스(Mega-Dose) 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비타민 C가 몸의 아연과 구리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일 일 권장량 정도의 미네랄을 경구 투여해 주는 것이 좋다. 실제로 하루에 우리 몸에서 소모되는 구리의 양은 약 2mg 정도로 알려졌지만,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서 흡수되는 양이 있으므로 경구 투여시 구리의 하루 섭취 권장량(RDA)은 900mcg(Micro gram)이고 임산부의 경우는 1000~1300mcg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세계 보건 기구 (WTO)의 보고에 따르면 구리의 경우에는 과도한 섭취로 인한 부작용의 위험 보다는 <b>부족으로 인한 위험이 더 큰 것</b>으로 알려져 있다. 구리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주현상은 발달기 청소년의 경우 성장기 발달 장애와 면역 저하로 인하여 감기에 대한 저항성 감소와 기억력 감퇴 학습 능력 저하 등이고 성인의 경우는 빈형, 심장등 순환기 문제와 신경계 및 면역 체계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구리의 과대 섭취의 부작용은 구리 중독이나 간손상 및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손상에도 관여되었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 물론 이 정도까지 흡수하려면 하루 권상량의 수십배를 몇 년간 섭취해야 하는 양이기 때문에 몸의 구리대사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한 과대 섭취에 의해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b>2) </b><b>요오드</b><b>(iodine) </b>

요오드는 사실 일일 권장량에 대해 여러 논란이 많은 미네랄이다. WTO의 일일 평균 권장량(RDA)는 성인의 경우에는 150mcg 임신부는 220mcg와 수유하는 산모의 경우 290mcg로 알려져 있는 데 일부 기능 의학 부분의 연구 결과로는 이 수치의 10배 ~ 20배 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미역국 한 그릇을 모두 마셨을 때 우리가 섭취하는 요오드는 약 1~2mg으로 일일 권장량의 10배가 넘는다. 또한 2차대전 이전에 요오드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죽이고 독 감등 감염과 관련하여 대량으로 사용하던 미네랄이었은데 어쩐일인지 최근 현대로 오면서 그 일일 권장량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요오드에 의한 치료는 아직도 루골 방법(Lugol solution)알려진 젬스테인 용액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요오드가 우리 몸에서의 역할을 주로 갑상선 호르몬의 재료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 요오드는 섭취량의 절반가량은 갑상선 외에 난소 유방 전립선등 거의 모든 기관의 기능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갑상선 호르몬 뿐 아니라 다른 여러 호르몬의 생성과 우리몸의 분비샘(침, 눈물등)에 관여하고 에너지 생성과 신경 발달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중금속과 방사성 물질의 체내 반감기를 줄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꾸준한 요오드의 섭취는 중금속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권장량 이상의 요오드를 꾸준히 섭취하고 있는 데 한 두달 지난후에 느끼는 것은 얼굴 피부가 먹기 전보다 훨씬 맑아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러 분비샘에 작용하여 피부를 맑게 하는 효과인 것 같다.

요오드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은 갑산선종(Goiter)이다. 또한 어린이의 경우 뇌 발달 장애나 임산부의 경우에는 유산이나 기형아 출산의 위험이 높아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산부나 수유부에게 미역국을 계속 섭취하게 하는데 참 놀라운 조상들의 지혜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오드 결핍의 전초증상은 몸이 매우 피곤하고 만성통증이 있으며 건망증이 심해지고 저체온증이나 만성적으로 추위를 타고 피부가 푸석해지면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 증상과 눈이 건조하고 침이 마르는 증상이 나타나고 또한 상처가 잘 낫지 않는다. 이러한 증상이 있는 분들은 요오드의 피부 도포 검사나 소변검사를 통해 체내 요오드 양을 확인하고 미역국 또는 다시마나 경구투여를 통한 꾸준한 요오드의 섭취를 권장드린다. 요오드의 과다 섭취에 대해서는 상한을 3mg으로 하는 문헌도 있으나 또 다른 문헌에서는 중금속과 방사성 물질의 배출을 위해 하루 12mg 이상을 섭취해야 한다고 주장도 있어 이 글에서는 상한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과잉 섭취의 경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온다고 하는 논문도 있으나 반대로 항진증이 온다는 논문도 존재하기 때문에 과잉 섭취가 갑상선 이상과 관련은 있으나 항진인지 저하인지도 역시 이 글에서는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b>3) </b><b>셀레늄 </b><b>(Se) </b>

셀레늄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네랄이었는데 브라질 너트 등의 마케팅 과정에서 항산화 작용과 면역 개선등에 역할을 강조하면서 대중화된 미네랄이다. 셀레늄의 가장 주된 역할은 갑상선이나 염증성 질환의 개선이며 항산화 작용으로 인한 항노화 당뇨 개선 생식능력 강화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미네랄 역시 많이 섭취했을 때 이런 작용이 있다고 하기 보다는 부족했을 때 이런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다. 하루 권장량 (RDA)는 불과 50mcg로 상한은 400mcg 정도이다. 셀레늄의 경우는 하루 200mcg를 꾸준히 섭취했을 때 전립선 암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다는 학계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400mcg를 넘을 경우 메스꺼움, 구토, 탈모 무기력증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되었기 때문에 의사와 상의 없이 상한을 넘어서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참고로 브라질 너트 10g에는 약 180mcg의 셀레늄을 함유하고 있어 경구로 셀레늄을 복용하기 보다는 브라질 너트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섭취 방법중의 하나이다.

 

<b>4) </b><b>망간 </b><b>(Mn) </b>

필자가 지인들에게 망간이 필수 미네랄이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런게 다 필요하냐고 하는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로 잘 안알려져 있는 미네랄이다. 망간은 보통 흔히 볼수 있는 건전지의 재료이기도 한데 확실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흙으로부터 창조하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망간은 우리몸에서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대사를 촉진하고 뼈의 건강과 골다공증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신경 전달계를 원활하게 하는 작용도 있고 또한 애정에 관련한 중추에 관계가 있어 토끼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망간이 결핍된 토끼는 새끼를 돌보지 않으려 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망간의 하루 권장량(RDA)는 2mg 이며 상한 섭취량은 11mg으로 알려저 있다. 망간은 개별로 경구 투여 하기에는 조금 까다로운 미네랄인데 퀴놀론계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에는 치명적일 수 있어 주의하여야 하지만 음식으로 망간을 섭취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과다복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망간이 많이 있는 음식물은 호두 아몬드 같은 견과류와 콩등 대두 식품 생강 연근과 같은 뿌리로 섭취하는 채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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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b><b>간단히 정리 </b></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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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아연과 구리는 어느 한쪽을 섭취했을 때 다른 한쪽이 결핍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경구투여시 반드시 같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li>
 	<li>요오드는 갑상선 뿐 아니라 세포 곳곳에 필요한 필수 미네랄로 우리나라의 경우 다시마나 미역국으로 꾸준히 섭취해 주는 것이 좋다. 다만 갑상선 질환자의 경우에는 의사와 의논하고 경구 투여 하는 것이 좋다.</li>
 	<li>셀레늄은 항산화와 함께 면역증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별도의 경구투여 보다는 브라질 너트와 같은 견과류를 통한 섭취가 바람직하다.</li>
 	<li>망간은 뼈건강과 신경중추에 관련된 미네랄로 역시 별도 섭취 보다는 견과류를 통한 음식물 섭취가 바람직하다.</li>
</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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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b><b>총 연재를 마치며</b></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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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에 관한 글을 쓰며 전기 공학을 전공한 필자가 괜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앞섰지만 연재를 계속하면서 나름 유명한 의학 저널에서 필요한 문헌과 논문들을 찾아 보면서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거나 또는 잘 안 알려져 있는 여러 영양제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만 비타민 C나 B군 E등 비티민 류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비타민 C의 경우 만일 필자에게 누가 ‘무인도에 모든 영양제를 통틀어 단 한 개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갈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필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비타민 C를 선택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영양제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주류 의학계에서는 좋다고 하는 의견과 나쁘다고 하는 의견이 충돌되고 있어 조금은 아쉽지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주제로 다루지 아니하였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양제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미네랄, 유황 그리고 비타민 A,B,C,D,E,K, 오메가3, 필수 아미노산과 같이 우리 몸에서 생산하고 있지 않아서 반드시 음식물로 섭취해야 하는 영양제 군이고 또 하나는 코엔자임Q10, 알파리포산과 같이 우리 몸에서 생산이 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생산이 줄어드는 것을 보충하는 영양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마카, 홍삼, 녹용, 아슈와간다, 베르베린, 그리고 **단과 같은 생약 제제이다. 앞의 두 영양제는 개인별 상황에 따라 음식물로 모두 섭취하기 어려우면 경구 투여 등으로 부족분을 보충해 줄 때 여러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생약 제제의 경우는 영양제라기 보다는 우리몸의 홀몬등을 조정하는 약제에 가까워서 전문가의 도움 없이 무작정 좋다니까 장기 복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일이다. 특히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단인데 원료의 내용과 용량에 대해 정확히 없는 것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먹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지난 4년 간 이 연재를 위해 애써주신 영혼의 샘터 여러 관계자 및 집사님 권사님들과 특히 격려와 열심으로 응원해준 황순신 집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총 10회에 걸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열 독해주신 여러 성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02 Jun 2025 15:20: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학 박사가 다시 쓰는 건강 보조 식품 이야기 9 균형 잡힌 미네랄 섭취법 (상)]]></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06]]></link>
			<description><![CDATA[이 글은 건강 기능 식품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 견해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을 오해하여 전문가와 상의 없이 현재 투약중인 약에 함부로 변화를 주시면 <b>절대</b> 안됩니다.

저자: 주성준

최근 코로나로 인하여 면역과 건강이 중요해지면서 각종 매체에서 면역에 좋은 영양제가 화두가 되는 것 같다. 평소 건강에 무심한 분들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면역을 위해 종합 비타민제 하나씩은 드시면서 점차 뭐가 좋다더라 하면 한 개씩 두 개씩 양을 늘리다가 급기야 열 종류 이상 늘어나게 된다. 영양제가 늘어나게 되면 먹으면서 들게 되는 생각은 이렇게 많이 먹는데 간이나 신장에는 괜찮나? 하는 생각과 영양제끼리 상호 작용해서 부작용은 없을까 하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섭취하는 영양제 중에서 면역에 중요하면서도 상호작용과 주의할 점이 가장 많은 각종 미네랄에 대해서 주요한 성질과 주의할 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창세기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전도서 3: 20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성경은 곳곳에 인간이 흙으로부터 나왔음을 아주 여러 군데서 증거하고 있다. 필자가 미네랄에 대해 처음 논문 등 여러 문헌을 조사하면서 우리에게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종류의 미네랄 섭취가 필요함을 알고 이것이 우리가 흙으로 지어졌다는 산 증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아주 극소량이라도 우리 몸에 필요하다고 알려진 미네랄은 대략 알려진 것만 70~80여 가지인데 아마도 수은 카드뮴과 같은 독성 중금속을 뺀 거의 모든 금속은 다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이 정도면 정말로 온 지구상의 흙을 골고루 먹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극소 미네랄 등은 대부분 음식을 통하여 흡수되므로 별도의 영양제 섭취는 필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본 기고문에서는 신체 소요량이 많아서 결핍이 발생할 수 있는 주요 미네랄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미네랄 편은 다루어야 할 종류가 너무 많아 2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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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b><b>주요 미네랄은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떤 효능이 있고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b><b>? </b></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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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양제 제품의 형태로 흔히 볼 수 있는 주요 미네랄은 칼슘, 칼륨(포타슘), 나트륨(소듐), 아연, 마그네슘, 철, 요드, 셀레늄, 구리, 망간 등이 여러 종류가 있다. 1편에서는 우리가 영양제의 형태로 가장 많이 섭취하는 철, 칼슘, 칼륨, 마그네슘에 대해 주요 성질을 알아보기로 한다.

1) 철분 (Fe)

철분의 하루 권장량은 남자 8mg, 여자 18mg이며 (폐경 이후 되면 8mg) 임산부의 경우 27mg, 수유모의 경우 9mg으로 알려져 있다. 철분은 산소를 운방하는 헤모글로빈의 생성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부족할 경우 헤모글로빈 감소에 의한 빈혈이 생기게 된다. 또한, 철분은 도파민의 합성에 작용하기 때문에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 철분 부족이 발생하면 학업 저하와 기억력 감퇴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반대로 철분이 과하게 되면 간장과 췌장에 철분이 축적되어 간 경화나 당뇨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평소에 골고루 식사를 잘하는 분들은 철분은 음식물의 섭취로 충분하며 별도의 철분제는 철분의 소요량이 많은 <strong><span style="color:#000000;">임산부를 제외하고는 드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span></strong>. 또한, 비타민 C를 매가 도스 하시는 분 중에 철분 과다가 나타나기 쉬운데 이는 비타민 C가 철분의 흡수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타민은 하루 6g 이상 메가 도스 하시는 분들은 멀티 비타민을 선택할 때 철분 성분이 없는 제제를 선택하실 것을 권한다. 다만 칼슘제를 별도로 드시는 분은 칼슘이 철분의 섭취를 방해하기 때문에 반드시 혈액 검사를 통해 철분농도를 검사하고 철분이 포함된 제제를 선택할지를 결정하시는 것이 좋다. 또한, 만성 간 기능 부전증이나 알코올성 간 경화, 알코올 중독 및 췌장 질환 환자 혈색소증 환자는 철분제제를 복용해서는 안 된다.

2) 칼슘 (Ca)

칼슘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인간의 체액의 ph를 유지하는 데 있어 알카리 성분으로 사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체액이 산성이 되었을 때 부갑상선 호르몬이 칼슘 덩어리인 뼈로부터 칼슘을 뽑아 체액에 공급하게 된다. 따라서 육류 등 산성 음식을 많이 섭취 했을 때 뼈로부터 칼슘을 뽑아 체액에 공급하여 골다공증 골연화증과 같은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칼슘의 섭취는 철분과 경쟁 관계에 있으므로 철분과 같이 드시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칼슘은 인(P)과도 경쟁 관계에 있는데 “인” 역시 영양소의 흡수와 운송에 필요한 우리 몸에서의 필수 미네랄이지만 인스탄트 음식에 아주 많이 들어있다. 따라서 인스탄트 음식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인의 섭취가 늘어나고 이러한 인은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게 된다. 칼슘은 심장이나 혈관의 수축작용에 관계하는데 칼슘은 인체의 뼈를 구성하는 성분이기 때문에 부족할 경우 언제든지 뼈로부터 공급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심장이나 혈관의 수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몸에서 부족해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칼슘의 부족은 주로 치주염, 골다공증과 같은 뼈의 손실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단어가 가장 맞는 미네랄이 칼슘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체액에 칼슘이 부족해질 염려는 거의 없는 반면에 반대로 칼슘의 공급이 많아질 경우 혈관의 석회화 동맥경화 신장결석 및 근육 석회화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의학 연구에서는 “칼슘의 역설”이라고 해서 칼슘의 섭취가 전혀 없었던 그룹과 칼슘제를 섭취하는 그룹의 수명을 비교했을 때 칼슘제을 섭취하는 그룹의 수명이 오히려 유의미하게 짧았다는 결과를 도출하여 칼슘제 섭취에 경종을 울린 적이 있었다. 그만큼 칼슘의 섭취는 조심해야 한다. 지난 8편 “동맥경화 있으신 분 꼭 보세요! 우리나라 사람 90%가 부족한 영양성분”에서 다루었듯이 섭취하는 칼슘은 비타민 D와 비타민 K2의 합작이 아니면 뼈로 들어가지 못하므로 칼슘제를 별도로 드시는 분들은 반드시 위 두 영양제를 같이 드실 것을 권한다.

3) 칼륨 (K)

칼륨 또는 포타슘으로 불린다. 칼륨은 나트륨(Na)와 경쟁 관계에 있는 미네랄로 아보카도 감자 토마토 브로콜리 바나나 복숭아 등에 풍부하게 있다. 칼륨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작용 그리고 신경작용에 중요한 미네랄이지만 곡류를 많이 섭취하는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크게 부족할 경우가 없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도로 섭취를 하지 않아도 되는 미네랄이다. 하지만 운동을 자주 해서 땀을 많이 흘리거나 구토 설사 등으로 체액을 많이 소실할 경우 일시적으로 칼륨의 부족이 나타날 수 있다. 칼륨은 나트륨과 경쟁 관계에 있는데 칼륨의 섭취가 많아지면 나트륨의 섭취가 제한되게 된다. 최근 고혈압인 분들이 소금의 섭취량을 극단적으로 줄인 무염식을 하면서 위산의 주성분인 HCL 중 염소(CL)의 섭취가 저감되어 위산이 묽어지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위액이 묽어지게 되면 위 속의 음식물이 머물게 되는 시간이 늘어나며 위장관 호르몬인 가스트린에 의해 묽어진 위산의 양이 증가하게 된다. 많아진 위산은 많이 나와 식도쪽으로 넘치면서 역류성 식도염과 같은 부작용을 겪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발생한 역류성 식도염은 저염식을 계속하는 한 좀처럼 완치되지 못하고 계속 재발하게 되는데 저염식 또는 무염식을 멈추면 발생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고혈압 치료를 위해 소금의 섭취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것도 방법보다는 소금을 적절히 섭취하면서 칼륨을 영양제의 형태로 섭취를 늘리는 방법이 나트륨 제한에 훨씬 더 효과적라고 할 수 있겠다.

4) 마그네슘

필자는 마그네슘을 왜 따로 섭취하지? 라는 질문을 하는 분께 그냥 드셔보면 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그네슘은 먹지 않을 때와 먹을 때에 참 많은 차이를 주는 값이 저렴한 영양제 중 하나이다. 마그네슘은 신경 전달 물질과 혈관과 근육의 이완 등 300여 가지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주로 수축작용에 관계하는 칼슘과 반대로 주로 이왕 작용에 관여하는 미네랄이다. 마그네슘의 이러한 성질은 부족해질 경우 신경과민, 고혈압, 협심증, 변비 등이 나타나기 쉽다. 반대로 변비 등이 생겼을 때 꾸준히 섭취하면 이러한 증상이 상당히 완화되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배우자가 갑자기 이유 없이 신경질이 많아졌다고 느꼈을 때 마그네슘을 선물하면 세상이 편해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특히 마그네슘을 꾸준히 복용하게 되면 심한 운동을 했을 때 근육 뭉침이 적어지고 각종 통증도 많이 완화 된다.

칼슘과 마그네슘은 서로 상생 관계이기도 하면서 경쟁 관계기도 한 다소 미묘한 관계가 있다. 한쪽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다른 쪽의 흡수가 감소하는 성질이 있으면서 적당한 섭취를 하면 다른 쪽의 흡수가 증가하게 되는데 칼슘과 마그네슘의 적절한 섭취 비율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2:1 ~ 1:1이다. 마그네슘은 주로 정제하지 않은 곡류 콩 견과류에 많이 있는데 최근 무기질 비료가 주로 사용이 되면서 땅속의 마그네슘이 부족하여 최근 생산이 되는 곡류에 마그네슘의 비율이 많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마그네슘은 별도로 섭취해주는 것이 좋은 데 하루 권장량은 300mg~ 500mg 정도이다. 갑자기 변비가 생겼을 때는 하루 1~1.5g 정도를 변비가 해소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많이 섭취하다가 해소되고 나면 꾸준히 300~500mg을 섭취해주면 변비를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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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b><b>미네랄 구매 시 주의할 점</b></li>
</ol>
최근 해외 직구를 통해서 구할 수 있는 미네랄 중에 킬레이트 미네랄들이 있는데 킬레이트는 미네랄의 흡수를 돕기 위해서 아미노산과 결합하여 흡수율을 매우 높인 제품들이다. 미네랄제를 먹어서 장에서 흡수하려면 먼저 위에서 강한 위산에 의해 미네랄이 이온화되어야 장에서 흡수가 될 수 있는데 어떤 원인에 의해 위산이 부족하거나 묽거나 하면 미네랄의 흡수는 매우 떨어지게 된다. 특히 멀티 비타민에 들어있는 마그네슘의 경우 주로 산화마그네슘 (MgO)의 경우 흡수율은 5~10%정도 밖에 안되어 50~60%인 킬레이트 마그네슘보다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킬레이트에 사용되는 아미노산은 글리신, 말레이드, 타우린, 구연산 등이 있는데 효능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만일 킬레이트 미네랄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위산을 보충해줄 필요가 있는데 어떤 종합 미네랄에는 아예 위산이 들어가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미네랄의 섭취가 위장 장애나 설사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별도로 위산을 섭취해주는 것이 좋은데 현재 제품화되어 판매되는 위산은 베타인 HCL (Betaine HCL)이 이다. 베타인은 주로 곡물에서 발견되는 비타민과 유사한 물질로 위장 내에서 베타인과 염산으로 분리되어 위산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과식했을 때나 나이가 들어 소화력이 떨어졌을 때 그리고 저염식으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필자는 40대 후반에 계속 재발이 되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었으나 베타인 HCL을 먹은 후에는 한 번도 재발한 적이 없다. 다만 위궤양과 같이 위 속에 상처가 있는 분들은 위궤양을 먼저 치료하고 섭취해야 한다. 그 외에 알려진 부작용은 별로 없다. 베타인 HCL은 식전에 먼저 드시는 것이 좋다. 또한, 모든 미네랄은 위산이 있어야 흡수가 원활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영양제와 마찬가지로 식사 때 같이 드시는 것이 제일 좋다. 그냥 반찬이라고 생각하고 밥과 함께 드시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각종 영양제를 드시면 소화 불량이 생기시는 분은 베타인 HCL 먼저 먹고 1분쯤 후에 식사와 함께 미네랄과 함께 드시면 이러한 소화 불량이 거의 없어진다.
<ol>
 	<li><b> </b><b>간단히 정리 </b></li>
</ol>
<ul>
 	<li>철분과 흡수 경쟁하는 미네랄은 칼슘이다. 두 미네랄 중 한 미네랄을 집중적으로 섭취하게 되면 다른 쪽 성분의 흡수가 방해되어 불균형이 일어나기 쉽다. 때에 따라서 두 미네랄을 동시에 섭취하게 되면 서로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두 미네랄을 모두 섭취하는 분은 아침과 저녁으로 나누어 섭취하는 것이 좋다.</li>
 	<li>칼슘은 부족할 경우 뼈 건강이 나빠지게 되는데 음식으로 섭취한 칼슘이 뼈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타민 D와 비타민 K2가 필요하다.</li>
 	<li>칼륨과 경쟁하는 미네랄은 나트륨이다. 따라서 칼륨을 섭취하게 되면 나트륨의 흡수가 떨어지기 때문에 저염식으로 나트륨 섭취를 관리하는 것보다 칼륨 제의 섭취로 나트륨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훨씬 건강에 좋다.</li>
 	<li>마그네슘은 고혈압, 변비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별도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칼슘을 별도로 섭취하는 분은 미네랄 균형을 위해 반드시 마그네슘을 섭취해야 한다.</li>
 	<li>모든 미네랄은 위산이 풍부해야만 장에서 흡수가 원활히 되기 때문에 식사 때 같이 드시는 것이 좋고 또한, 위산이 부족하신 분들은 Betaine HCL과 같이 섭취했을 때 아주 좋은 흡수율을 갖게 된다.</li>
</ul>]]></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02 Jun 2025 15:16: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학 박사가 다시 쓰는 건강 보조 식품 이야기 8 대한국민  90%가 부족한 비타민D/K2]]></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05]]></link>
			<description><![CDATA[동맥경화 있으신 분 꼭 보세요!

그러나 이 글은 건강 기능 식품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 견해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을 오해하여 전문가와 상의 없이 현재 투약중인 약에 함부로 변화를 주시면 <b>절대</b> 안됩니다.

 

저자: 주성준

이번 호에는 햇빛 비타민이라 알려진 비타민 D와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비타민 K2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비타민 D는 우리 몸의 칼슘의 흡수를 조절하여 우리 몸속에서 뼈 건강을 비롯한 면역력 강화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비타민이다. 하지만 꼭 외부에서 섭취해야 하는 다른 비타민과는 달리 피부가 자외선 B에 노출되며 몸속 콜레스테롤이 비타민 D로 전환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는 비타민 D를 호르몬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줄고 또한 야외 활동을 하더라도 피부암 예방을 위해 자외선 차단제 등을 많이 사용하여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더라도 비타민 D의 생성이 거의 미미하기 때문에 이제는 반드시 외부에서 섭취해야 하는 비티민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한편 비타민 K는 K1과 K2로 나뉘는데 비타민 D와 짝궁인 것은 비타민 K2이다. K2의 경우 2000년대에 들어 활발히 연구가 되기 시작하기 시작되면서 동맥 경화증과 관상동맥 석회화 등 심장 질환에 그 효과가 입증이 되었다.

칼슘의 역설이라고 알려진 이론은 식품이나 보총제로 칼슘을 과다 섭취한 경우 심장마비와 뇌졸중의 위험이 증가되며 신장 결석 및 근육내 석회화가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칼슘이 부족할 때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칼슘의 과다 섭취와 관계 없이 우리 몸은 칼슘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어 칼슘이 부족하게 되면 대부분 칼슘으로 이루어진 우리 뼈에서 칼슘을 혈관으로 보내서 항상 일정 비율을 맞추게 되어 있다. 칼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칼슘을 식품이나 보충제로 보충해 주더라도 대부분의 칼슘은 그냥 배출되는데 이 때 칼슘의 흡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비타민 D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흡수가 되어 혈액 속에 들어온 과잉 칼슘이 뼈로 가야 하는데 만일 뼈로 가지 못하고 혈액 속 칼슘이 많아지게 되면 혈관의 석회화와 각종 결석 및 근육 석회화등 각종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밀하게 설계하신 우리 몸에는 혈액 속에 있는 칼슘을 뼈로 운반하는 중요한 두 가지의 단백질이 있는데 하나는 오스테오칼신(Osteocalcin)으로 불리는 단백이고 또 하나는 Matrix GLA Protein (MGP)이란 단백질이다. 먼저 오스테오칼신은 혈액 내 칼슘과 결합하여 이를 뼈로 운반하는 단백질이며 MGP는 동맥의 석회화를 막아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그런데 이 두 단백질 모두 활성화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비타민 K2이다. 두 물질의 농도는 혈액 속의 비타민 K2의 농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b>1-1. </b><b>비타민 </b><b>D</b><b>는 무엇이고 누가 먹으면 좋고 어떤 효능이 있는 것일까</b><b>? </b>

비타민 D는 지용성 비타민이고 식품과 보충제에서 발견되는 형태는 크게 D2 (에르고칼시페놀)과 D3(콜레 칼시페놀)이지만 보충제의 형태는 D3의 형태가 훨씬 많이 개발되었다. 비타민 D의 주 역할은 체내의 칼슘과 인의 흡수를 조절하여 체내 양을 조절한다. 따라서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칼슘 흡수가 제한이 되어 급격한 골 밀도의 저하가 나타나게 된다. 또한, 발육기 어린이의 경우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치아 법랑질 결함의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 성인의 경우에는 주로 골절 등 뼈 밀도의 감소에 의한 병과 뼈의 노화로 인한 디스크 퇴행과 요통이 나타날 수 있다. 낮은 비타민의 D 수치는 류마치스성 관절염 발병 위험을 높이며 질병의 중증도 진행이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심혈관 질환 위험도 증가하여 사망률을 높인다는 많은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이 밖에도 불면증을 비롯하여 고혈압과 비알콜성 지방간 질환 및 만성 염증, 천식, 습진, 건선 등 알러지 질환 및 면역력 저하, 불면증 발기부전 비만 편두통 다발성 경화증 파킨스씨병 치매 및 알츠하이머 병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많은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이처럼 비타민 D의 결핍은 거의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만큼 많은 종류의 질환의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결과들을 해석할 때 주의할 점은 비타민 D를 다량으로 복용한다고 해서 약처럼 위에 언급한 질병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타민 D의 결핍이 위에 언급한 질환의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어서 예방적 차원에서 비타민 D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b>1-2. </b><b>비타민 </b><b>K</b><b>는 무엇이고 누가 먹으면 좋고 어떤 효능이 있는 것일까</b><b>? </b>

비타민 K는 비타민 D와 같이 지용성 비타민으로 필로퀴논 또는 피토나디온이라고 하는 K1과 메타퀴논이라 부르는 비타민 K2로 나뉘어 진다. K1의 경우 주로 녹색잎 채소에서 발견이 되고 혈액 응고에 관여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 사람에 있어 K1에 대한 결핍증상은 매우 드믈다고 한다. 비타민 K2의 경우 낫또에서 유래한 MK7 (메타퀴논 7)과 육류나 달걀 노른자로부터 유래된 MK4(메타퀴논4)의 형태로 보충제가 출시되는데 MK7이 MK4보다 체내에서의 반감기가 길다고 알려져 있다. K2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혈관 내 석회화 및 동맥경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매일 180mcg를 섭취한 3년동안 섭취한 그룹의 동맥경화가 감소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Geleijnse, J Nutr 2004 ; Beulens, Atherosclerosis 2009 ). 또한 독일에서 실시한 다년간의 연구에서 통계적으로 암으로 사망 및 남성 전입선 폐암 발병률이 유의미 하게 감소되었다고 한다. ( Nimptsch, Am J Clin Nutr 2010)

필자가 직접 몸에 체득한 비타민 K2의 잇점은 무엇보다도 동맥 경화를 완화하거나 더 이상의 진행을 막는데 아주 탁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일 년에 두 번씩 경동맥 초음파를 통해 내중막의 두께(IMT)와 죽상판 (Plaque)을 체크하는데 비타민 K2를 꾸준히 먹고 나서 1년쯤 되었을 때 놀랄 만큼 효과가 좋았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개인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필자와 같은 효과가 있지는 않겠지만 지금 동맥경화가 막 시작된 분들은 한번 참고해 볼 만한 결과일 것 같다. 어쨌거나 비타민 K2는 혈관내 칼슘을 뼈로 보내는 두가지의 단백질의 시동 열쇠 역할을 함으로써 혈관 내 칼슘 과다로 인한 여러 가지 질환을 막거나 되돌릴 수 있는 중요한 비타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ol>
 	<li><b> </b><b>비타민 </b><b>D</b><b>와 비타민 </b><b>K2</b><b>을 섭취할 때 주의점</b></li>
</ol>
비타민 D와 비타민 K2는 지용성 비타민이기 때문에 비타민 C와 같은 수용성 비타민에 비해 다소 주의할 점이 있다. 특히 비타민 D의 경우 지나치게 고농도의 비타민을 오래동안 섭취하게 되면 두통, 식용부진과 고칼슘 혈증과 함께 급격한 간수치의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 이는 비타민 D 40,000IU (비타민 D 1mcg는 40IU이다) 이상을 몇 달간 섭취해야 일어날 수 있는 증상으로 정상적으로 판매되는 영양제의 권장량을 먹을 경우에는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수치이다. 의학적인 보고를 봐도 매일 비타민 D 열 알을 몇 개월 먹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비타민 K의 경우 지용성이기는 하지만 매우 안전하여 과량을 섭취에 대한 부작용은 거의 학계에 보고된 바 없다.
<ol>
 	<li><b> </b><b>비타민 </b><b>D</b><b>와 </b><b>K2</b><b>의 복용법 </b></li>
</ol>
비타민 D와 비타민 K2는 지용성 비타민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름과 함께 먹어야 한다. 필자의 경우 올리브 오일을 뿌린 야채나 오메가3와 함께 먹고 있는데 식사 중간에 하나의 반찬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가장 좋은 것 같다. 특히 두 개의 비타민은 함께 먹어야 효과가 좋다. 간혹가다가 매일 먹기 싫어서 몇 달에 한번 씩 비타민 D 근육 주사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번에 하루 섭취량의 100~400배 정도의 고용량을 근육 주사의 형태로 맞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에 어떤 원인에 의해 이 용량이 혈액으로 갑자기 풀리게 되면 급격한 혈액 내 농도의 상승으로 인한 피로감과 고칼슘 혈증이 올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고 주사로 섭취하여도 비타민 K는 별도로 경구 섭취해야 해서 가급적 매일 두 개를 같이 보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비타민 D의 적정한 혈중 농도는 30~ 100 [ng/dl]로 알려져 있고 매일 400IU정도가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70세 이상 되신 분들은 매일 800IU정도가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정한 비타민 D의 혈중 농도는 여러 연구에 의해 상당히 논란이 있지만 필자가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 적정한 비타민 D의 혈중 농도가 35[ng/dl] 이상 60[ng/dl] 미만 인 것 같다. 물론 유방암의 경우 60[ng/dl] 이상 될 때 위험이 감소되었다는 연구도 있지만 그 정도로 유지하려면 하루 10,000IU이상의 고용량을 계속 섭취해야 하고 이럴 경우 피검사를 계속하며 섭취를 조절하지 않는 한 흡수 정도에 따라 100[ng/dl]의 혈중 농도를 넘어갈 수 있어 위험하다.

비타민 D의 이상적인 섭취 방법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혈중 농도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필자가 권장하는 방법은 먼저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피검사로 자신의 비타민 D농도를 측정하고 나만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요즘은 피검사 가격도 싸고 결과가 거의 24시간이면 나오기 때문에 아주 쉽게 누구나 검사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의 혈중 농도가 20[ng/dl]미만인 분들은 하루 5000IU의 용량을 2달 가량 복용한 후 다시 검사해서 40[ng/dl]이상이 되었을 때 용량을 하루 걸러 5000IU로 줄여서 다시 2달 뒤에 검사해서 용량 변화가 없으면 그대로 유지 하고 용량이 올라갔던지 내려 가면 이 용량을 조절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하지만 이도 저도 귀찮으면 그냥 2달간 5000IU씩 섭취하고 그 다음에는 2000IU씩 죽 섭취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기회가 될 때 비타민 D수치를 추가하여 자신의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꼭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피검사 결과가 30[ng/dl]이상이신 분들은 대략 2000~3000IU를 매일 섭취 하던지 아니면 하루 걸러 5000IU를 섭취하면 된다.

비타민 K2의 경우 통상적으로 150mcg를 일일 필요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보다 10배 이상 많이 섭취하여도 특별한 부작용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간혹가다 비타민 D와 K2가 같이 있는 제품의 경우 2,000mcg의 K2가 포함되어 있는 제품도 발견된다. 하지만 K2의 경우는 너무 낮은 용량의 K2를 섭취한다면 섭취하지 않는 것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유의할 점인 것 같다. 이 연재물 1편에 밝혔듯이 모든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영양제는 하루 필요량(RDA)가 있는데 하루 필요량이라는 것은 이것보다 부족하게 섭취할 때 몸에 문제가 생기는 양이고 실제 그 영양 성분의 잇 점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보다는 많이 먹어주어야 한다. 자세한 것은 이 연재물 1편 ”건강보조제란 무엇인가“에 다루었으니 궁금하신 독자는 1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ol>
 	<li><b> </b><b>비타민 </b><b>D, K2 </b><b>구매 시 주의할 점</b></li>
</ol>
비타민 D의 경우 반드시 용량을 보고 구매해야 한다. 마트에서 파는 비타민 D의 경우 1000IU 미만 제품이 많이 발견이 되는데 이런 제품의 경우 매일 한알 씩 먹는다고 해도 혈중 비타민 D농도의 변화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필자가 권하는 방법은 앞에 기술한 바와 같이 4000~ 5000IU가 되는 제품을 구매하여 섭취하는 시간을 매일 ~ 2일에 한 번 정도로 섭취 간격을 조정하는 것이다. 비타민 D의 경우 체내 반감기가 30일 정도이므로 일주일 몰아서 섭취하고 일주일 쉬는 등의 간격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용성 비타민에 비해 섭취가 용이한 편이다. 비타민 K2의 경우는 반감기가 14일 정도인 MK7 원료가 반감기가 5일 정도로 알려진 MK4의 원료보다 비싸지만 두 원료의 효과는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같은 가격이면 MK4보다는 MK7의 함량이 많은 비타민 K2를 구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같은 용량에 비해 가격이 최대 30배 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반드시 용량 대비 가격을 살펴보고 구매하는 것이 좋다. 또한 최근에 유명 해외 제조사에서 비타민 D와 K가 포함된 좋은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어 각각 구매하는 것 보다 같이 포함된 제품이 훨씬 저렴한 편이다.
<ol>
 	<li><b> </b><b>간단히 정리 </b></li>
</ol>
<ul>
 	<li>비타민 D의 부족은 골다공증 뿐 아니라 류마치스성 관절염, 심혈관 질환, 불면증, 고혈압, 비알콜성 지방간, 만성 염증, 천식, 습진, 건선 등 알러지 질환, 면역력 저하, 불면증, 발기부전, 비만, 편두통, 다발성 경화증, 파킨스씨병, 치매 및 알츠하이머 병 우울증각종 암과 두통등 거의 모든 만병의 근원이다.</li>
 	<li>비타민 K2의 경우 동맥 경화 및 혈관 석회화를 예방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양제이다.</li>
 	<li>비타민 K2가 없이 비타민 D만 섭취할 경우 혈액 내 칼슘을 뼈로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효과가 떨어져 두 비타민은 항상 같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li>
 	<li>두 비타민 모두 지용성 비타민이기 때문에 항상 식사 때 기름진 음식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li>
 	<li>비타민 D를 고용량의 주사로 맞는 것 보다 꾸준히 경구로 섭취하는 것이 혈중 농도를 조절하기에 좋다.</li>
</ul>]]></description>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02 Jun 2025 15:13: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학 박사가 다시 쓰는 건강 보조 식품 이야기 7 약인듯 약 같은데 약은 아닌 참 좋은 MSM]]></title>
			<link><![CDATA[http://drjoo.kr/wordpress/?kboard_content_redirect=104]]></link>
			<description><![CDATA[이 글은 건강 기능 식품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 견해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을 오해하여 전문가와 상의 없이 현재 투약중인 약에 함부로 변화를 주시면 <b>절대</b> 안됩니다.

<img src="/wordpress/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8/202506/683d3fc0d40f09070809.jpg" alt="" width="722" height="239" />

이번 호에는 화장품에서 보조식품까지 많은 각광과 호평을 받는 제품인 MSM(methyl –Sulfonyl Methane)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식이 유황 또는 식물성 유황으로 알려진 MSM은 독성 광물질인 유황 (S)를 독성 없이 섭취할 수 있도록 식물로부터 추출된 성분이다. 예전부터 다섯가지 매운 맛 채소를 뜻하는 “오신채”라 하여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무릇)는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금하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5개의 매운 채소의 공통 성분은 무슨무슨-sulfide라는 매운 맛을 나게 하고 특유의 냄새를 갖는 바로 “황”성분이다. 짐작하였듯이 엄격한 금욕을 요구하는 수도자들에게 금단의 음식인 오신채는 바꾸어 말하면 최고의 스태미너식이다. 물론 이런 채소들은 황성분 외에도 여러 다른 좋은 성분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맵고 특이한 향을 주는 황성분이 활력을 주는 주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황 성분은 열에 쉽게 파괴되기 때문에 오신채를 날것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온전히 황을 섭취하기는 어렵다. 황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미네랄 성분 중 칼슘 인 다음으로 3번째로 많은 미네랄이다. 피부와 관절 손톱 머리털에 가장 많이 함유가 되어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장능력이 떨어지면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성분 중 하나이다. 황은 새로운 세포 및 호르몬의 생성에 관여하고 에너지 대사를 위해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체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ol>
 	<li><b> MSM</b><b>은 무엇이고 누가 먹으면 좋고 어떤 효능이 있는 것일까</b><b>? </b></li>
</ol>
MSM의 화학식은 (CH3)2SO2 으로 독성 유황성분을 두 개의 메틸기(CH3)가 황에 붙은 형태로 무독하게 만들어 제품화 한 영양 보조식품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도 유황오리와 같이 불쌍한 오리를 학대(?)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유황의 독성을 제거하여 안전하게 섭취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이를 자양 강장 식품으로 먹어 왔던 것 같다. MSM은 1970년대 말부터 치료 목적으로 오레건 대학의 Stanley Jacob 박사팀이 연구를 시작하였고 1981년 Robert Herschler 박사가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손톱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미국에서 실용특허를 받았다. Herschler 박사는 자신의 특허에서 MSM이 스트레스 해소, 통증 완화, 기생충 감염 치료, 에너지 증가, 신진 대사 촉진, 순환 개선 및 상처 치유 개선을 주장하였다. 그 이후 MSM은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왔는데 그 효능은 참으로 놀랍다.

물론 아직 학문적으로 통계적 분석이 더 필요하지만 사례 연구로 특히 퇴행성 관절염을 포함한 각종 관절염에 통증완화와 염증 저하는 치료 약 만큼이나 확실하게 작용을 한다는 증거가 있다. 또한 운동 후의 근육통을 저하하는 데도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피부 재생 및 에너지 부스팅에도 뛰어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MSM의 가장 좋은 효능은 각종 관절염과 근육통에 대한 치유 및 완화 효과이다. 사실 관절염에는 주로 소염 진통제들이 처방이 되는데 이들 약들은 여러가지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위장 장애등으로 어려움을 격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정말 강권하고 싶은 보충제이다. 이부분은 필자가 필자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에 MSM을 권했던 거의 모든 분들이 관절통과 근육통에 아주 탁월하고 놀라운 효능들을 나타냈음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정말로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 이 외에도 임상 실험 논문으로는 명확히 증명되지 않고 있지만 아토피 피부염을 비롯한 각종 피부병과 콜레스테롤 감소 및 뼈 강화 작용 당뇨 감소 및 면역증진에도 효과가 있다는 많은 체험 사례를 참고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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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MSM</b><b>을 섭취할 때 주의점</b></li>
</ol>
MSM은 그 독성이 물과 비슷할 정도로 LD50이 체중 1kg당 20g 정도이니 매우 안전한 물질이다. (체중이 60Kg인 분이 한 번에 1.2Kg을 먹을 경우 50% 정도가 독성을 나타냄) MSM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영양제로 알려져 있지만 간혹 아주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갑자기 다량 섭취했을 때 가벼운 피부 발진이나 두통 메스꺼움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와파린, 아스피린과 같은 혈전 용해제를 지속적으로 투약하시는 분은 MSM도 이 약들과 유사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주치의와 상의가 필요할 것 같다.

MSM을 섭취할 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타민 C와 같이 섭취해야 분명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두 개를 항상 같이 섭취해야 한다. MSM은 캡슐 형태의 알약도 있지만 가성비 때문에 보통 고운 가루 형태를 물에 타서 섭취하는데 황의 특성상 깜짝 놀랄 정도로 써서 익숙해 질 때 까지는 마실 때 마다 매우 곤욕을 치루는 사람들이 많고 이런 맛 때문에 장기 복용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수한 가루 비타민 C는 신맛이고 MSM은 쓴맛이어서 두 개를 동시에 물에 타서 먹으면 서로 서로 중화되서 그냥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MSM의 양이 많이 쓴맛이 더 강할 경우에는 약간의 구연산 가루를 같이 타서 복용해도 좋을 것 같다.

MSM의 또다른 부작용 아닌 부작용은 에너지 부스팅 효과가 커서 저녁 늦게 먹으면 밤에 잠이 안 올 수가 있다. 반대로 수험생들이나 야근등 강행군을 해야 하는 분에게는 커피보다 훨씬 좋은 각성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필자가 간접 경험한 가장 멋진 부작용(?)은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중년 여자의 경우 피부가 너무 고와지고 이뻐져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피부 시술 받은 것으로 오해한다는 부작용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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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MSM</b><b>의 복용법 </b></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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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내의 황의 하루 소요양은 500mg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1편에서 알아본 것 같이 하루 소요량 정도만 섭취해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약용으로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흡수율을 감안해서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1.5~2g를 섭취해야 하고 관절염 등에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하루 4g~ 10g정도까지 개인 상황에 따라 섭취를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만일 하루 4g을 섭취한다면 흡수율 등을 감안하여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섭취하거나 아침 식사 전에 2g과 점심이나 저녁 식사 전에 2g씩을 먹거나 아니면 아침에 2g, 점심 식사 때 1g, 저녁 식사 때 1g과 같이 나누어 섭취하면 좋다. 다만 숙면을 위해서 너무 늦은 시간에 섭취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비타민 C의 적정용량을 같이 먹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아침 기상과 동시에 MSM 1g 비타민 C 1g과 점심식사 전에 같은 용량을 물에 타서 섭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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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MSM </b><b>구매 시 주의할 점</b></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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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국내 기업들이 MSM을 네트워크 마케팅 같은 판매망을 통해 한 달 분을 10만원 가량을 받고 팔고 있는 것이 종종 발견된다. 그 성분에 몇몇 비타민 미네랄들을 들러리로 쬐끔 더 들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 해외 직구의 경우 배송료를 포함하여도 순수 MSM 1Kg 분말기준으로 3~4만원선이다. 해외 직구에서도 쓴 맛을 피하기 위해 캡슐형태로 판매도 되고 있는데 분말 형태보다는 상당히 비싼 편이고 고용량을 섭취하기 위해 여러 알을 먹어야 하는 등 불편해서 여러 가지로 판단할 때 분말 형태가 가장 좋을 것 같다. 참고로 해외 직구의 1kg 분말 정도의 용량이면 하루 10g의 대용량을 섭취한다고 하더라고 약 3개월 분이고 유지를 위해 2g~3g정도를 섭취한다고 하면 거의 일년치 분량이다. 순수 MSM의 제품은 여러회사에서 많은 제품이 있는데 특히 MSM을 구매할 때는 가장 먼저 선택의 조건이 되야 하는 것은 MSM의 원료이다. 필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효능을 조사해본 결과 OptiMSMTM이라는 원료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급적이면 이 원료를 사용했는지 확인하고 구매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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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 </b><b>간단히 정리 </b></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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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MSM은 꾸준히 적정용량을 섭취했을 때 관절통, 운동직후의 근육통, 염증 제거, 피부미용, 에너지 부스팅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li>
 	<li>MSM의 적정용량은 건강한 사람이 유지를 위해서는 2g 정도이고 관절염 등의 개선을 위해서는 적어도 4g~10g을 섭취해야 효과가 있다.</li>
 	<li>MSM을 섭취 시에는 반드시 비타민 C와 같이 섭취해야 효과가 좋다.</li>
 	<li>MSM은 분말을 물에 타서 먹는 방식이 가장 가성비가 좋은데 대략적인 가격은 분말 1Kg당 3~4만원 선이다.</li>
 	<li>MSM 제품은 여러 회사에서 출시하고 있지만 100% 순수 원료 추출방식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OptiMSM ®사의 원료를 채택한 회사 제품이라면 어떤 회사의 제품도 비슷하다.</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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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Drjoo]]></author>
			<pubDate>Mon, 02 Jun 2025 15:08: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drjoo.kr/wordpress/?kboard_redirect=28"><![CDATA[영혼의샘터 기고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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